[동네뉴스- 시민기자 세상보기]딸아!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 '삐약이 엄마'였단다

  • 김호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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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08   |  발행일 2022-02-16 제13면   |  수정 2022-02-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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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순 시민기자


설날 차례상을 물리고 나니 외손자가 왔다. 한복에 앙증맞은 세뱃돈 주머니를 달고서 말이다. 아직은 세배가 뭔지 잘 모르는 생후 9개월 된 귀염둥이다.

3년 전 딸은 임신 초 프랑스 출장길에 올랐다. 공항에서 택시를 이용해 호텔로 향하던 중, 뒤따라 온 오토바이 2인조 강도단이 유리창을 깨고 돈과 여권이 든 가방을 강탈해갔다. 엉겹결에 당한 일로 충격이 컸던 딸은 하혈 후, 첫 아기가 유산되는 큰 아픔을 겪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작년 5월 태어난 외손자는 딸에게 "엄마"라는 귀한 이름표를 선물해 주었다.

서른 네 살 늦은 나이에 딸은 "영혼의 짝을 만났다"며 집을 떠났다. 스물여섯에 엄마가 된 나에 비하면 적잖이 애를 태운 셈이다. 일년 육아휴직을 받아 엄마노릇에 전념하고 있는 딸이 고맙고 기특할 뿐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 딸은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다. 원하는 만큼 늦잠을 잘 수 있었고, 날마다 긴 머리카락에 예쁘게 화장도 했다. 강보에 싸인 갓난쟁이를 산후조리원에서 데려온 첫날, 전화기 너머 딸은 엉엉 목놓아 울고 있었다. 벌써 3시간째 아기가 울고 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활처럼 몸을 젖힌 채….

초승달이 비치는 지붕위에서 삐약이와 한 발자국 떨어져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삐약이 엄마의 처연한 뒷모습을 그린 그림책이 생각났다. 국내 그림책의 대표작가 백희나의 '삐약이 엄마'는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를 되돌아보게 하는 엄마들을 위한 그림책으로, 악명 높은 고양이 '니양이'가 작고 귀여운 병아리 '삐약이'를 낳으면서 벌어지는 황당하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담고 있다.

내 생각과 내 마음대로 삶을 운용하던 젊은 시절은 찾아볼 수 없고, 우는 아기를 안고 어찌할 수 없음에 발을 동동 구르던 그 옛날의 나도 그려졌다. "엄마는 희생과 헌신해야 한다"는 모성이데올로기에 압도되어 말로 표현하는 것도 억압당한 이시대 엄마들과 딸들의 이미지가 바로 '삐약이 엄마'다. 작가는 모성이란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닌,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기 돌봄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대상관계이론가인 위니컷은 출산 2주전부터 시작해 출신 후 몇주동안 지속되는 어머니들의 마음상태로 자신의 주관성을 포기하고 유아의 주관성을 발달시키는데 몰두하는 엄마들의 정상적인 광증상태를 '일차적 모성몰두(primary maternal preoccupation)'라고 말했다.

삐약이 엄마인 니양이가 출생초기 자신과 전혀 닮지않은 삐약이를 핥아주고, 안전하게 보호해주며 최고의 음식을 먹여주는 등 완벽한 돌봄을 제공해 주는 엄마가 되어가는 장면이 바로 초기모성몰두(p.m.p)의 한 컷이다.

엄마 닭들 사이에 어줍잖지만 당당하게 서서 아기를 지켜보고 돌보는 니양이는 그렇게 엄마가 되어간다. 애처롭고 처연하다. 아기가 아플 때 대신 아파줄 수가 없어 가슴아파한 적이 없었던 나, 그토록 쪼그만 존재가 그렇게 영향을 끼칠 줄 몰랐던 엄마가 된 딸,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게 될 줄은 엄마인 나도 엄마가 된 딸도 미처 알지 못했다.

이제 8월이면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삐약이 엄마'인 딸의 고민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발달의 토대를 이루는 영유아 시기에 엄마는 온전히 아기와 함께 해 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기가 정서적 대상항상성(objet constancy)이 생겨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시기까지 엄마는 곁에서 엄마 품을 내줘야 한다. 아기가 존중받는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일을 성취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려면, 엄마의 큰 인내와 정서적 가용성이 중요하다.

대상관계학자 마가렛 말러(Margaret Mahler)는 엄마가 부재중일 때도 자신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엄마에 대한 긍정적인 내적 심상이 발달되어 엄마없이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시기를 만 3세로 본다. 엄마들의 육아휴직 3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대통령 선거가 30일도 채 남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 그 누구도 "3세 미만 영유아를 둔 부모 육아휴직 3년 보장.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엄마들 오전 근무가능"등의 선거공약을 외치는 이가 없다.

엄마가 처음인 세상의 모든 '삐약이 엄마'들이 직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아이를 훌륭히 키워내고 일터로 복귀할 때, 오히려 가산점을 주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져야 한다.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엄마와 충분한 사랑을 나누는 절대적 시간 3년"에 후한 상점과 예산투입을 하는 정책입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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