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숙맥'이든 '쑥맥'이든

  • 안미애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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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24   |  발행일 2022-02-24 제22면   |  수정 2022-02-24 07:09
혼동하기 쉬운 우리말 표현
숙맥과 쑥맥, 본래 형태 살린
'숙맥'이 표기법에 맞는 단어
살려쓸 수 있는 우리말 찾아
사라지는 고유어 보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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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애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숙맥, 쑥맥. 어떤 것이 맞는 표기일까? 표기법에 맞는 단어는 '숙맥'이다. '숙맥'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동음이의어로 '宿麥(숙맥)'과 '菽麥(숙맥)'이 나온다. 이중 우리에게 익숙한 '숙맥'은 뒤의 '菽麥'이다. 앞의 '宿麥'은 보리를 다르게 이르는 말이다.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처럼 '쑥맥'이 입에 더 붙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쑥맥'이 마음에 든다 해도 사전에서 '쑥맥'을 찾으면, 규범 표기는 '숙맥'이고 표준 발음도 [숭맥]이라고 단호하게 설명하고 있다.

'구글'에서 2022년 2월21일 기준으로 '쑥맥'을 찾으면 13만5천여 개의 사용례가 나오고, '숙맥'을 찾으면 23만6천여 개의 사용례가 나온다. 그 사용 내역을 세세히 밝혀볼 수는 없으나 적어도 10만1천여 개만큼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숙맥'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언제부터 우리가 '숙맥'을 '쑥맥'과 혼동하기 시작한 것일까? 필자가 가진 자료에서 검색되는 가장 오래된 '숙맥'은 18세기에 한문을 한글로 번역한 책(언해)에서 보이는 '슉맥(여기서 ㅐ는 아래아자와 ㅣ의 결합 모음이다. 한글 옛 글자가 구현되지 않으므로 이후 고어는 괄호에 별도로 고어임을 표기하기로 한다)'이다.

"…동셔를 아지 못하며 슉맥(아래아+ㅣ)을 분변치 못한(아래아) 즉 엇지 부언을 지어낼 리 이시리오"(1777년, 명의록 언해)

원문의 앞 내용은 생략하였다. 인용에서 생략한 주어가 너무나 어리석어 동과 서를 알지 못하고,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니 말을 지어낼 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다 19세기 '제국신문'에 와서 현대어와 같은 '숙맥'을 만날 수 있다. "윤씨는(아래아) 사위 숙맥 불변이더라"(1898 제국신문). 이 예처럼 원래 '숙맥'은 사자성어인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온 말이다. 이는 1880년에 발간된 '한불자전'이나 1897년에 발간된 '한영자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후 20세기부터는 "너 같은 숙맥(菽麥)더러 그런 말을 하는 내가 그르지.(현진건(1921), 술 권하는 사회)"라고 상대방이 '숙맥'임을 한탄하는 말이나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달리지 않었나.(김유정(1935), 봄봄)"라고 놀리는 말도 만날 수 있다.

이렇게만 봐도 '쑥맥'은 설 자리를 잃는다. 아마도 말할 때 청각적인 인상을 강하게 하기 위해 단어의 어두음인 'ㅅ'을 '된소리화'하다가 생성된 단어가 '쑥맥'이었을 것이다. '숙맥' '쑥맥'과 관련 있는 표준어 규정의 기본적인 입장은 잘못된 된소리 발음은 표기에 반영하지 않고 원래 형태대로 쓴다는 것이다. 그러니 '숙맥'이 옳은 표기이다.

이상과 같이 처음 이 글의 출발은 '숙맥을 바르게 쓰자'였다. 그런데 '숙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조사하다가 인터넷의 어떤 게시판에서 '쑥맥이 뭐야'란 질문을 보았다. 이런… '숙맥'이든 '쑥맥'이든 이 단어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당장 필자만 해도 '숙맥'이란 단어를 쓴 지 오래되었다. 이러다 보면 '쑥맥'의 자리가 '짜장면'처럼 넓어지기 전에 '숙맥'이든 '쑥맥'이든 둘 다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김유정의 '봄봄'을 읽거나 공부하지 않음 직한 초등학생에게 '숙맥'이나 '쑥맥'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다. 이렇게 시험으로 공부해야 살아남을 말들이 많아졌다. 요즘은 바른 표기법이 무엇이냐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살려 쓸 우리말을 찾아 쓸 노력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미애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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