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20] 압록강 일보과(一步跨), 폭격으로 끊어진 전쟁의 상흔…지척 북녘땅에 드리워진 안개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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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4   |  발행일 2022-03-04 제35면   |  수정 2022-03-0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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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 단교. 왼쪽 철교는 1943년 완공돼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조중우의교'. 철교 건너편이 북한 신의주.

1945년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되고,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3년 7월에는 다시 휴전선(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이로 인한 한민족의 고통이 어떠했는가. 흐르는 세월 따라 그냥 잊어버려도 될 일인가. 분단으로 우리 민족이 입는 손해 또한 얼마나 큰가.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처럼 금강산을 올라 그 감흥을 신나게 그려보고 싶은 남쪽 화가들이 있어도 몽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런 정서가 강한 남한 기성세대의 북한 산하에 대한 정서는 각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무장지대가 있는 휴전선 지역보다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 특히 북한 땅이 지척인 곳에 가면 더욱 특별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 지역 중 한 군데가 중국 단둥(丹東) 호산촌(虎山村)의 일보과(一步跨)라는 곳이다.

2006년 12월 중국 선양(瀋陽)에서 버스를 타고 단둥으로 갔다. 단둥에서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가서 먼저 일보과를 찾았다. 일보과에서 개울 건너편 북한 땅을 밟아본 뒤 호산장성을 둘러봤다. 그리고 다시 단둥으로 돌아와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철교인 압록강 단교(斷橋)에 올라 전쟁 때 생겨난 총탄 자국 등을 살펴보았다. 배를 타고 압록강을 오르내리며 경계 근무 중인 북한 병사들을 보기도 했다. 일정한 거처 없이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북한인들을 지칭하는 '꽃제비' 아이를 시내에서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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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보과의 중국 쪽 강가에 중국 여성이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고 있고, 북한 쪽에는 한국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북한과 지척인 일보과

중국어로 '이뿌콰'로 부르는 일보과(一步跨)는 호산장성 관광지 안에 있다. 호산장성이 있는 호산촌은 단둥에서 압록강을 따라 상류로 15㎞쯤 떨어진 곳이다.

일보과는 호산장성 뒤 쪽 언덕 아래로 흐르는 압록강 물가의 한곳이다. 강변 언덕 위 작은 공터이자 나루터이기도 한 이곳은 압록강을 사이에 둔 중국과 북한의 국경인 중조변경(中朝邊境) 가운데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호산장성 주차장을 지나 남쪽으로 난 언덕길을 올라서면 '중조변경 일보과(中朝邊境 一步跨)'라고 적힌 큼지막한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 '지척(咫尺)'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짝을 이뤄 서 있다. '과(跨)'는 넘는다는 뜻. 그러니 일보과는 한걸음에 넘는 국경이란 말이다. 표지석 바위 옆에는 맞은편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는 망원경 한 대가 설치돼 있었다.


北·中의 국경중 가장 가까이 인접
큰 바위에 '중조변경 일보과' 새겨
압록강 샛강 건너편에 넓게 펼쳐진
서울 여의도 절반 크기 北 '우적도'
꽁꽁 언 강가서 얼음깨고 빨래 풍경

고구려 박작성, 中 호산장성 탈바꿈
만리장성 동단기점 정한 동북공정
파괴된 철교와 교역, 두 개의 철교



일보과 둑 아래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압록강의 한 갈래로 샛강인 셈이다. 이 샛강 건너편에 넓게 펼쳐져 있는 땅이 바로 북한 땅으로, 압록강 하중도 우적도(于赤島)다. 북한의 의주군 방산리라고 한다. 우적도의 크기는 서울 여의도의 절반 정도.

이 샛강의 넓이는 10m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샛강에는 얼음이 얼어있었다. 중국 쪽 물가에는 한 주민 여성이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강바닥으로 내려가 북한 쪽 둑 아래까지 가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국경이지만 당시에는 양쪽에 철조망이나 초병도 없어 그냥 시골의 작은 개울 풍경과 다름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 이후에 중국과 북한 양쪽에 철조망을 쳐놓은 모양이다.

일보과는 호산장성이 관광지로 개발된 이후 특히 한국인 관광객이 점차 많이 찾게 된 국경 나루터다.

◆동북공정 산물 호산장성

호산장성이 있는 호산은 애하와 압록강이 합쳐지는 곳이다. 호산장성은 중국의 '압록강 국가중점풍경구' 가운데 하나로, 중국은 이 성을 만리장성의 동쪽 출발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만리장성의 동쪽 출발점이 그동안 알려진 허베이(河北)성의 산해관(山海關)부터가 아니고, 동쪽으로 더 멀리 간 곳인 호산장성이 그 동쪽 기점(起點)이라는 주장이다. 호산장성 성루가 있는 곳 부근에 광장을 만들고 대형 기념조형물 등을 설치해놓았다.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호산장성 터는 실제로는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이 있던 곳이다. 당나라군이 압록강을 거슬러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구려가 쌓은 성이다. 만리장성과는 관계없는 성의 흔적이 있었는데, 1990년대에 벽돌로 성을 새로 쌓고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이라고 표시해놓은 것이다. 호산장성박물관도 세우고, 진나라 시대 등의 복제유물과 그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중국은 호산에서 만리장성의 석축을 발견했고 그 위에 새롭게 성을 쌓았다고 주장하나 학술적 증거는 없다.

1991년 호산 일대를 발굴한 중국 조사단은 쐐기돌로 쌓은 석축과 대형 우물을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이곳에 고구려의 대형 성벽 터가 있었다는 발굴 결과를 정리했다. 그리고 1994년 전 요녕성박물관장 왕면후가 집필한 '고구려 고성 연구'는 고구려의 박작성은 호산장성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삼국사기의 박작성 관련 기록을 통해 보장왕 7년(648)에 당나라 1만의 병사와 고구려의 3만의 병사가 박작성에서 전투했음을 알 수 있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하여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길목을 통제하는 중요한 산성이었다. 성에서 고구려 시기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 것을 볼 때, 고구려가 단둥 지역을 차지하게 되는 4세기 이후에 건립된 주요 방어성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고구려의 박작성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박작성은 고구려의 옛 성이 아니라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으로 탈바꿈하고 그 이름도 '호산장성'으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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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의 국경 중 가장 양쪽 땅이 가까이 인접해 있다는 중국 단둥의 일보과. 한 발만 건너면 넘을 수 있는 국경이라는 의미다. 건너편에 보이는 들판이 북한 땅인 압록강 하중도. 2006년 12월 모습.

◆압록강 단교

단둥 압록강에 가면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가 두 개 놓여 있다. 하나는 온전하고, 다른 하나는 중간에 끊어져 있다. 끊어진 압록강 단교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 압록강 국경에 일본 제국이 건설한 철교로, 한국 전쟁 당시 유엔군의 폭격으로 끊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단교의 길이는 944m. 1908년 8월 일본 제국이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을 이어 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둥으로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를 착공했다. 착공 후 3년 동안 연인원 5만명을 동원해 1911년 10월에 준공했다. 한반도에서 중국의 만주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국제 철도 노선이 연결된 것이다. 강을 오르내리는 배를 통과시키기 위해 중간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개폐식(開閉式)으로 만들었다.

1932년 통계에 의하면 보도 통행자만도 연간 260만명이었다고 한다. 1934년 11월부터 교량 보존을 이유로 개폐를 중지했다. 1945년 8월15일 광복이 되자 그 기념으로 한 번 연 일이 있다. 한국전쟁 중 1950년 11월8일 유엔군의 폭격으로 교량의 중앙부에서 북한 쪽 땅까지가 파괴되어 단교가 되었다.

이 다리의 바로 상류 쪽에 1943년 완공된 압록강의 두 번째 철교가 있다. 현재는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라고 명명되어 이용되고 있다. 일제가 1937년 새로운 다리 건설에 착공, 1943년 4월 개통했다. 복선형 철교로 건설된 이 다리는 1990년 북한과 중국의 합의에 따라 '조중우의교'라 개칭했다. 이 철교는 북한과 중국 간 교역 물량의 80%가 처리되는, 북한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교량 역할을 해왔다.

압록강 단교는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이 건설하고 미국이 부순 이 단교는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 역사의 현장이다. 중국인들은 대륙으로 들어오려는 침략자(미군)를 막아낸 구국 항쟁의 상징으로 본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미국의 침략에 맞서고 북한을 도왔다고 해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으로 정의한다.

단둥 압록강 근처에는 항미원조기념관이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1958년 단둥에 관련 기념시설들을 짓기 시작했고, 1993년 현 위치에 대규모 기념관을 개관했다. 2014년 말 내부 보수 및 확장을 위해 잠시 문을 닫았다가 2020년 9월 재개관했다. 재개관하기 전 항미원조기념관을 방문한 관람객 수는 1천20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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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이곳에 방문했을 당시 수많은 중국 사람들이 줄을 서서 관람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전시관 내에는 한국전쟁 참전 과정과 전사에 관한 다양한 기록과 사진, 깃발, 무기 등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앞에 1953년 한국전쟁이 종료되었음을 상징하는 높이 53m의 기념탑이 서 있다. 기념탑에는 '항미원조기념탑(抗美援朝紀念塔)'이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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