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원조들이 말한 기본소득

  •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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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4   |  발행일 2022-03-04 제22면   |  수정 2022-03-04 07:26
정치권 논쟁하는 기본소득
두 원조들의 생각서 벗어나
권리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복지정책으로 돈을 뿌리면
예산·대상선정에 갈등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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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어떤 이들은 기본소득의 기원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찾지만,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기본소득론을 펼친 사람은 토머스 페인과 토머스 스펜스였다. 페인은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시민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였고, 스펜스는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 토지개혁 운동을 이끈 활동가였다. 스펜스는 페인의 기본소득론을 비판할 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으나, 두 사람의 견해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다.

두 원조의 견해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기본소득을 복지가 아니라 '권리에 대한 보상'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페인은 1796년 출간한 '토지정의'라는 책에서 인간은 토지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점유할 자연적 권리를 가질지언정 영구적 사유재산으로 삼을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페인의 기본소득은 경작의 발달과 함께 토지 사유제가 도입되면서 모두가 똑같이 누려야 할 토지권이 박탈된 데 따른 보상이었다. 그는 기본소득의 재원이 토지 지대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빈자와 부자를 가리지 않고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인이 "내가 주장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며 박애가 아니라 정의"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한편 스펜스는 페인이 수혜 대상에서 제외했던 22~49세에게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보편적 기본소득론을 완성했다. 페인과 다른 점은 토지의 지대뿐만 아니라 가옥과 건물을 포함하는 모든 부동산에서 나오는 수익을 재원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부동산에서 나오는 수익을 제대로 걷는 경우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넘어 다른 모든 조세를 철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본소득의 두 원조는 사회에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누려야 할 공유부(common wealth)가 존재한다고 본 셈이다. 페인은 토지를, 스펜스는 모든 부동산을 공유부로 여겼지만, 자연자원이나 환경이 토지와 동일한 성질을 갖는다는 점에 비추어 그것들도 공유부에 포함할 수 있다. 원조들의 구상에 따라 제도를 만들 경우, 기본소득은 국가가 이유 없이 모든 국민에게 뿌리는 돈이 아니라 마치 주식회사가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듯 공유부에 대해 권리를 갖는 이들에게 지급하는 배당금이 된다.

지금 한국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은 원조들의 생각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기본소득 주창자도 반대자도 모두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본소득을 권리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복지 급여로 인식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든다' '왜 빈곤층에게 집중하지 않는가' '어디서 재원을 확보할 것인가' 하는 비판이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복지정책이 아니라 국민에게 권리를 되찾아주는 경제정의 실현 정책으로 보고 제도를 도입할 경우, 예산 시비나 재원의 정당성 문제 그리고 수혜 대상 선정 문제는 한꺼번에 해소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하는 미국 알래스카주가 바로 이렇게 한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정부 소유 유전에서 생기는 석유 수입으로 펀드를 만든 후 그 투자 수익으로 1년 이상 거주자 전원에게 해마다 배당금을 지급해 왔다. 배당금은 많을 때는 연 2천달러를 초과하고 적을 때는 연 500달러에 미달했다.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주민들은 그 돈이 자신들의 권리에 대한 보상임을 인지하고 있고 그래서 제도에 대한 지지 여론도 높다. 정책을 처음 구상한 원조의 생각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정책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쉽다. 현재 한국의 기본소득 논쟁이 무익한 말싸움으로 그치는 이유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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