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다수의 횡포'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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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5   |  발행일 2022-04-25 제25면   |  수정 2022-04-2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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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통치체제(rule by many)'로 정의된다. 이른바 다수 지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어떤 이론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수의 횡포(the tranny of majority)'라는 문제에도 직면한다. 인민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전적 정의와 소수 의견이 다수에 의해 묵살되는 현실은 모순적이다. 민주주의는 상충하는 이 두 명제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의 파레토 최적을 찾을 수 있을 때 순항할 수 있다.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진전이 선행되지 않고는 정치발전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견을 조율하고 공론의 장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절충과 타협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합의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정치다. 다수결은 그 다음의 문제다.

국회의 일반의결정족수를 충족해서 법안을 통과시키면 법률적 하자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절차적 정당성은 단순히 법에 규정된 의결정족수만을 채우거나 선거에서 불법이나 부정 등의 행위가 없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질적 의미의 절차의 정당성은 여야가 조율이나 타협을 거쳐 이견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이 전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의결정족수를 충족하면 된다는 생각은 상대를 설득하고 조율하는 민주적 과정이 생략된 하수의 정치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해 검찰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을 발의하고 국회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이려 하다가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여야가 받아들이면서 숫자를 앞세운 강행처리는 막을 수 있게 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 후 검찰이 직접 수사해 온 '6대 범죄'에서 부패와 경제수사만 남기고 나머지 수사는 할 수 없다. 새 법안 공포 후 4개월 뒤에는 검찰이 6대 범죄 중 선거 범죄와 공직자 범죄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거대양당과 신구 권력이 검찰 수사로 처벌 가능성이 있는 공직자 범죄와 6·1 지방선거 이후 선거법 위반 수사를 회피하기 위해 선거와 공직자 범죄 수사를 검찰 수사 범위에서 제외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선거사범은 법리가 복잡하고 공소시효가 6개월에 불과해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 당장은 존속하기로 한 부패·경제 수사도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이 설치되고 범죄대응 역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폐지토록 했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기준도 애매하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법조문 조율 과정에서 여야가 다시 충돌할 소지를 안고 있다. 수사청의 공정성과 중립성 및 사법적 통제를 담보할 방안도 마련해야 하고, 검사의 수사권을 전제로 만든 공정거래법이나 범죄인인도법 등 30여 개 관련 법도 정비해야 한다.

4월에 검찰개혁 법안을 합의 처리하기로 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미비한 법 개정 논의가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후에 민주당이 야당이지만 압도적 의석으로 자신들이 관철하고자 하는 바를 밀어붙일 수 있다.

앞으로도 검수완박 법안뿐만 아니라 다른 법안에서도 의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신을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다수 의석을 믿고 반대파의 의사를 무시하는 퇴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구나 국민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법안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수의 지배'라는 대의제 민주주의 정신이 '다수의 횡포'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행정권력을 가질 국민의힘이나 거대야당으로 정부를 견제할 민주당 모두에게 해당하는 명제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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