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탈권위주의 시대를 바라며

  • 조진범
  • |
  • 입력 2022-05-16   |  발행일 2022-05-16 제27면   |  수정 2022-05-16 07:06

2022051501000440800018061
조진범 논설위원

몇몇 장면이 눈길을 끈다. 지난 9일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국민의힘 측 증인으로 출석한 김경율 회계사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박광온 법사위원장이 "팔짱 푸세요. 증인"이라고 하자, 김 회계사는 "이런 자세가 안 됩니까"라며 받아쳤다. 권위주의에 맞선 시민의 반격이었다. 알량한 권위를 내세워 압박하려는 좀스러운 권력을 향한 통쾌한 일침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팔짱은 처음 등장한 게 아니다. 2020년 3월 법제사법위에 참석한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야당 의원의 지적에 팔짱을 끼고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추 장관의 팔짱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주말인 14일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전통시장과 백화점을 들러 쇼핑을 했다. 비공식 일정이었다. 윤 대통령은 집 근처 백화점에 들러 구두 한 켤레를 구입했고, 광장시장에서 빈대떡, 떡볶이, 순대 등을 샀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쇼핑은 시민들에 의해 알려졌다. 언론에 알리고 이미지 홍보용으로 방문한 게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봤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잊히고 싶어 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소환하는 게 다소 거북하긴 하지만, 리더십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전 대통령은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기획에 의해서만 무대에 섰다는 느낌을 받는다.

윤 대통령의 행보나 김 회계사의 반응은 '탈권위주의'의 작은 발걸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리더십'이 자칭 민주정부라고 큰소리쳤던 문재인 정부를 넘어 윤석열 정부에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갖게 한다. 또 한 장면을 보자. 최근 열리고 있는 광주 5·18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 거리 전시전에 윤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이 있다. 윤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남성이 손바닥과 이마에 '왕(王)'자를 새기고 하의만 입은 채 쩍벌 자세로 앉아 있다. 어깨에는 '정치보복'이라고 적혀 있는 띠를 둘렀다. 민미협 측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공적 인물에 대해 풍자하는 문화가 꽃펴야 한다. 풍자의 방식은 불편하겠지만 공적 인물인 당사자가 일일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민주 사회에서 다소 동떨어진 사고다"라고 했다. 동의한다. 윤 대통령은 웃어넘겨야 한다. 그래야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자유'에 대한 진정성이 담보된다. 표현의 자유를 결코 막아선 안 된다. 5·18역사왜곡처벌법을 비판했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민주와 자유는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권위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그랬다. 자신에 대한 풍자를 권위의 훼손으로 보고 문제를 제기했다. '북조선의 개 한국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문구가 담긴 전단을 만들고 뿌렸다는 이유로 시민을 고소한 데서 알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의 시민 고소는 민주국가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시작이 좋다고 끝까지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윤 대통령이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탈피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청와대를 개방하고 용산 시대를 열었다.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첫 대통령도 됐다. 윤 대통령의 권위는 탈권위주의를 지향할 때 비로소 나온다. 국민의 존중을 받는 게 진정한 권위다.
조진범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