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업무상 뇌심혈관 질병과 과로

  • 김성아 한국EHS 연구소·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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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7   |  발행일 2022-05-17 제16면   |  수정 2022-05-17 07:53
주당 5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업무 관련 질병의 3분의 1 책임성
좋은 노동시간의 가장 큰 요건은
사람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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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아 (한국EHS 연구소·직업환경의학전문의)

A(39)씨는 회의를 마치고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쓰러졌다. 사무직인 그의 상병명은 지주막하 출혈이었다. 관리직으로 일하는 B(45)씨는 수개월간 타지에 파견근무 중, 퇴근 후 원룸에서 숨졌다. 추정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75세의 경비원인 C씨는 발병 전 3년간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던 중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이들의 발병 전 3개월간 주당 평균 업무 시간은 52시간 내외였다. 이 내용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겪은 사례들이다.

2016년 휴대폰 부품 제조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던 청년 6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었다. 직업병이라 함은 이런 것일 텐데 뇌출혈이나 뇌경색, 심근경색 같은 질환이 어떻게 업무상 질병일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과 같은 기초 질병이 잘 알려진 원인 또는 위험 인자들인데 일 좀 많이 했다고 어떻게 업무상 질병이라는 건가.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는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이하 뇌심혈관질병)은 뇌실질내출혈, 지주막하 출혈, 뇌경색, 심근경색증, 해리성 대동맥류, 그 밖에 시행령에 열거되지 않은 뇌심혈관질병이다. 일단 신청 상병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면 세 가지의 기간으로 나누어 대상 질병에 이르게 할 만한, 다시 말해 기초 질병이 있더라도 자연 경과 이상으로 진행·악화시킬 정도의 업무상 부담 정도를 평가한다.

첫째는 증상 발생 전 24시간 이내 돌발 상황 또는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둘째는 발병 전 1주 이내 단기 부담이 있었는지, 셋째는 만성 부담과 관련해서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지, 주당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부담 가중요인과 업무강도, 책임 등 관련 특이사항을 평가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업무부담 가중요인은 △근무일정 예측의 어려움 △교대제 △휴일 부족 △한랭, 온도변화, 소음 등 유해한 작업환경에의 노출 △높은 육체적 강도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지 △높은 정신적 긴장 등이 해당된다.

업무상 뇌심혈관질환들에 영향을 미치는 업무적 특성들은 노동시간의 길이(장시간 노동), 배치(야간 노동과 교대근무), 밀도(업무 스트레스)의 문제들이다. 가장 핵심은 장시간 노동이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가 2000년부터 2016년까지 194개국을 대상으로 수행한 '장시간 노동과 업무상 질병 및 상해 부담'에 대한 공동조사연구 결과를 보면 주당 5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은 전체 업무 관련 질병 부담 추정치의 약 3분의 1의 책임성이 있고, 주당 55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주당 35~40시간의 근무에 비해 뇌졸중의 위험성은 35%, 허혈성 심장 질환으로 인한 사망의 위험성은 17% 더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좋은 노동시간 (decent working time)'이란 일하는 사람이 건강해야 하고, 가족 친화적이어야 하며, 성별 평등을 증진해야 하고,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며,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시간을 선택하고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지난해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이 펴낸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한 주에 55시간 일하는 것이 과로인가 아닌가 하는 것보다 지금 내가 혹은 그가 하는 일이 '적절한 업무' '좋은 업무'인지 묻는 것이 일과 관련된 우리의 감각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김성아 (한국EHS 연구소·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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