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한국인의 문화관련 증후군, 화병

  • 곽호순 곽호순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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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4   |  발행일 2022-05-24 제16면   |  수정 2022-05-24 08:05
분노를 오랫동안 누른 탓에 생긴 병
한국인들 정신장애 용납하기 힘들어
방치 시 울화증·우울감 동반하기도

곽호순
곽호순 (곽호순 병원장)

인간의 정신 행동은 당연히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그 문화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증상을 우리는 '문화 관련 증후군'이라 부른다.

문화란 '특정한 인간 집단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되고 전수되어 온 관념 및 가치로서 그 집단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원형적 틀'이라고 정의해 볼 수 있겠다. 마음의 병도 이런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 다양한데 그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마음의 문제를 진단하려 한다면 나침반 없이 길 찾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진단 기준에는 문화의 차이가 충분히 잘 반영되어 있지 않아서 그것이 아쉽다.

한국인에게는 독특한 한국문화가 있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마음의 병 또한 차이가 있다. 그럼 한국인은 어떤 정신 행동적 특성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까. 일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보면, 우리 한국인들은 일상에서 벗어난 행동과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들을 정신장애의 주된 특징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면 엉뚱한 얘기를 하는 망상장애나 부적절하고 기이한 행동을 하는 조현병의 양성 증상 같은 경우에는 정신장애로 인식하는 반면, 드러나는 사고장애가 없지만 속으로 조용히 진행되는 조현병의 음성 증상 같은 경우에는 정신장애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 우리 한국인들은 정신장애의 원인을 신체적 요인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매우 독특한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마음의 병을 심리적 원인으로 접근하는 치료법에는 은근히 저항한다.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마음에 대한 병이라도 마음을 치료하는 대신 신체질환으로 생각하고 그런 치료를 받기를 선호한다. 그런 병으로는 화병(火病)이 대표적인 우리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마음의 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병은 일종의 '분노증후군'이고, 분노를 계속 억제해 온 까닭에 생기는 심리적 문제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울화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병은 분노감, 우울감, 불면증, 공황, 피로감을 비롯해 건강 염려증, 소화 불량, 식욕부진, 호흡곤란, 심계항진, 두통과 일반적 통증, 상복부에 덩어리가 맺힌 느낌 등의 신체화증상 등 다양한 증상으로 이뤄져 있다. 이 화병은 대부분 만성적인 경과를 나타내며 우울감과 분노감이 공존하는 병이 된다. 이 화병이야말로 한국의 우울증 환자들이 그들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을 잘 풀어내지 못하고 긴 시간 억압을 해 오며 살아온 결과 심리적 고통을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하게 되는 독특한 문화 관련 증후군의 대표 질환이라 할 수 있다.

화병은 주로 남편이나 시부모와의 갈등,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 가난과 허리 한 번 펴지 못해 본 고생, 자녀에 대한 실망, 대인관계의 갈등 등에 의해 유발되며 속상함, 억울함, 분함, 화남, 증오감이 대표적인 감정이다. 이런 정서적 어려움을 제때 표현하고 풀지를 못하고, 또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용납되지 않아 결국 이 감정들은 억압되고 억제되어 내면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억제되고 억압된 감정들은 긴 시간 어둠 속에서 침묵한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서서히 신체화 과정을 통해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되는 이 독특한 문화 관련 증후군이 바로 화병이다.

이 화병을 모르고는 우리나라 중년 여성들이 주로 나타내는 특이한 분노감과 울화증이 동반된 신체화 증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하며 아무리 용한 서양 의사가 온다 해도 이 병을 잘 치료할 수 없다. 문화를 잘 알아야 마음의 병도 잘 진단할 수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마음의 병만큼 그가 살아가고 있는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병은 없기 때문이다.

곽호순 (곽호순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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