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반지성적 팬덤 정치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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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0   |  발행일 2022-06-20 제27면   |  수정 2022-06-20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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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논설위원

최근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즈'에 잠정 활동 중단을 선언한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렸다. 이 신문의 아시아 에디터 리처드 로이드 패리가 당한(?) '팬덤 문화'가 눈길을 끈다. 그는 "BTS의 멤버 RM을 가볍게 놀렸다가 외국인 혐오증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팬들이 트위터로 욕설이 담긴 항의 글을 쏟아부었다"고 토로했다. 팬덤 문화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비판한 것이다.

팬덤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됐다. 대중문화에 그치지 않고 정치로 확산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박제된 듯하다. 팬덤의 선한 영향력보다 편가르기나 좌표찍기처럼 부작용에 더 주목하기도 한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정치 분야의 팬덤은 대중문화와 달리 동기 자체가 불순하다고 평가한다. 특정인을 좋아하거나 사랑해서라기보다 반대편에 있는 정당이나 후보를 증오하기 때문에 형성된 집단이라고 한다. 상당 부분 동의가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팬덤 정치를 보면 그렇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국민의힘을 친일파의 후손, 토착왜구로 본다.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똑같이 취급한다. 개딸(개혁의 딸), 냥아(양심의 아들)로 대표되는 '이재명 팬덤'은 이재명 의원이 자신을 대신해 국민의힘을 응징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재명 팬덤은 국민의힘만 겨냥하지 않는다. 민주당 내 비명(비이재명) 인사들을 '수박'이라고 조롱하며 공격한다. 이재명 의원만이 국민의힘에 맞설 수 있다고 여기는 탓이다. 이재명 팬덤에서 정치의 중요한 철학인 대화와 타협, 관용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이든 간에 배제될 뿐이다.

민주당의 팬덤이 처음부터 배타적이고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는 지성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감시하기도 했다. 반지성적으로 몰려다니지 않았다. 정작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팬덤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고 부작용을 심화시켰다. 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상대 후보 측에 보낸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에 대해 "경쟁에 흥미를 더하는 양념"이라고 했다. 압권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 해"였다. '문재인식 팬덤 정치'가 정당화된 셈이다. 민주당의 문화로도 자리를 잡았다.

팬덤이라는 단어 자체가 배타성과 폭력성을 담고 있지 않은가라는 의심까지 든다. 지지하는 사람과 자신을 같은 선상에 놓다 보면 언제든지 폭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건희사랑' 운영자 강신업 변호사가 대표적 사례이다. 강 변호사는 자신을 비판한 시사평론가를 향해 욕설을 써가며 분노를 표시했다. '정치적 갑질'이다. 마치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윽박지르는 듯하다.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폭력을 부른 꼴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이 봤던 장면 아닌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던 신평 변호사는 "정치인에게 힘이 생기려면 팬덤이 있어야 한다. 다만 팬덤이 폭력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정치인에게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이재명 의원, 강신업 변호사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추가해야 할 것도 있다. 팬덤을 형성하는 집단 스스로도 고민을 해야 한다. 증오와 혐오가 아니라 존중과 관용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팬덤 정치가 더이상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면 지성의 옷을 입어야 한다.조진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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