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국가 조문국으로 떠나는 의성 여행 .3 <끝>] 금성면 산운마을, 수정 같은 계곡 아래 구름 감도는 마을…배산임수 명당에 수많은 애국지사 탄생

  • 류혜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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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1   |  발행일 2022-06-21 제12면   |  수정 2022-06-2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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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들어선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산운마을. 뒤편에 보이는 산이 한반도 최초의 화산이자 조문국 시대의 주산인 해발 500m의 금성산이다.

마을 어디에서나 금성산(金城山)이 보인다. 이 골목에서도, 저 대청마루에서도, 어디에서나 금성산의 반듯한 위용과 마주한다. 한반도 최초의 화산이자 조문국 시대의 주산이다. 500m가 조금 넘는 높이지만 내륙분지에 우뚝 솟아 장엄하다. 금성산 동쪽에 마주 보며 솟은 산은 비봉산(飛鳳山)이다. 봉황이 날아오르는 형상으로 고대 조문국이 비봉곡을 국악으로 창작하였다는 산이다. 두 산줄기는 말발굽 모양으로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에 수정처럼 맑다는 수정계곡이 서남향으로 길고 깊다. 마을은 계곡이 시나브로 활짝 펼쳐져 농경지를 이루는 평평한 땅에 자리한다. 먼 옛날에는 계곡을 따라 일대를 다상(茶上)·다중(茶中)·다하(茶下)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신라 시대의 어느 날 수정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였고, 마을은 그때부터 산운(山雲)이 되었다고 전한다.

조선 선조 무렵 영천이씨 집성촌 시작
반촌 이루며 많은 학자·항일지사 배출

입향조 기리는 학록정사엔 강세황 글씨
소우당 별당은 '영남제일 정원' 불려
폐교된 산운초교는 자연학습장 변모

◆ 대감마을, 산운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마을 뒤로는 금성산과 비봉산이 섰고 마을 앞으로는 쌍계천이 흐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선녀가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는 절묘한 형국'이라 한다. 화산활동이 멈춘 금성산 정상은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그곳에 조상 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되지만 주변 지역은 3년간 가뭄이 든다는 오랜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을은 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발전했다고 여겨진다. 처음에는 장씨·의성정씨·능성구씨·수원백씨가 살았고, 이후 단양우씨·아주신씨가 들어와 각성 촌락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조선 선조 때, 영천이씨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이 산운으로 들어왔다. 이후 마을은 영천이씨 집성촌으로 오늘날까지 45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학동 이광준은 임진왜란 동안 많은 공을 세우고 통정대부에 올랐고 형조참의를 거쳐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형인 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은 광해군 때 승지를 지냈으며 정묘호란 때는 경상좌도 의병장으로 활동했다. 전란이 끝난 후에는 좌승지·우승지 등 여러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우는 자암(紫巖) 이민환(李民)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영남호소사 장현광(張顯光)의 종사관으로 활약하다 많은 벼슬을 거쳐 노년에는 사직을 여러 번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70세가 넘도록 호조참판과 경주부윤 등을 지낸 이다. 이후 이광준의 손자 이정상(李廷相)과 이정기(李廷機)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5명이 대과에 급제하면서 산운마을의 영천이씨는 의성의 대표적 명문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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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당 별당은 작지만 멋스러운 연못과 수석들, 소나무와 상수리나무·산수유나무·대나무 등으로 꾸며져 '영남 제일의 정원'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전통은 이어져 근대에도 많은 학자와 애국지사가 배출되었다. 이태대(李泰大)와 이홍(李鴻)은 산운에서 부와 한학으로 영천이씨의 명성을 떨친 형제다. 형 이태대는 천석꾼의 재력가로 항일독립운동 군자금 마련에 힘썼고 아우인 이홍은 인근 지역의 현판들과 책의 서문을 쓸 만큼 학문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형제는 일제강점기 조문국 경덕왕릉의 향사를 위해 조직되었던 왕릉향사계 계원이기도 했다. 경산(耕山) 이태직(李泰稙) 역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다. 그는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활동하다 36세 때 옥고와 울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성사람들은 그의 굽히지 않은 뜻을 칭송해 '의성의 댓잎'이라 부른다.

산운마을에는 지금도 영천이씨 후손들이 살고 있다. 오랜 시간과 함께 더러는 변했지만,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살던 반촌의 모습은 고스란하다. 수백 년 된 회화나무와 영천이씨의 큰 종택인 경정종택, 작은 종택인 자암종택(紫巖宗宅), 마을을 대표하는 세 분의 제사를 모시는 학록정사(鶴麓精舍), 그리고 후손들이 세운 점우당(漸于堂)·운곡당(雲谷堂)·소우당(素宇堂), 이태직 생가 등 40여 동의 지정 문화재와 전통가옥들이 즐비하다. 먼 데서부터 기와의 물결이 반짝거리는 마을, 그래서 산운마을은 예부터 양반마을 또는 대감마을이라 불린다.

◆ 교교하고 아름다워라, 산운의 옛집들

마을 초입 골목에 회화나무 한 그루가 금성산과 비봉산 사이에 걸려 있다. 그 앞에 경정종택이 자리한다. 이광준의 아들 경정 이민성이 태어나고 살고, 세상을 떠난 집이다. 종택은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무너졌다. 현재는 겨우 남은 사당을 중심으로 새로 지은 것으로 고아한 멋은 없으나 마을의 구심점이 되는 집이다. 사랑채는 수락당(壽樂堂)이다. 현판 글씨는 원래 한석봉이 경정 선생을 위해 쓰고 경정의 증손인 이수규가 새겨 걸었는데, 소실된 이후 경정의 10세손인 이홍이 다시 건물을 세우고 현판을 썼다고 한다. 집 앞의 회화나무는 수령 350년쯤으로 짐작된다. 선비의 마을을 상징하는 이 회화나무는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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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된 산운초등학교는 2001년부터 5년에 걸쳐 자연학습장 및 전시장이자 휴식처인 산운생태공원으로 바뀌었다.

논밭이 펼쳐진 마을 서편 가장자리에는 학록정사가 있다. 입향조인 학동 이광준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정사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영조 26년인 1750년경으로 추정된다. 지방유형문화재로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인 팔작지붕과 문틀 등이 당시의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강당 가운데에 반듯하게 걸린 학록정사 현판은 표암 강세황의 글씨다. 정사 마루의 동쪽에는 '유의(由義)', 서쪽에는 '거인(居仁)'이라 새긴 현액을 달았다. 인(仁)에 머물고, 의(義)를 따른다는 의미다. 뒤쪽에 있는 광덕사에는 이광준과 아들인 경정 이민성·자암 이민환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학록정사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반촌의 중앙부로 들어간다. 기와를 얹은 흙돌담 길이 꽤 넓고 교교하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소우당이다. 소우(素宇) 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 초에 건립하였고, 안채는 1880년대에 고쳐 지었다고 한다.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다. 안채의 서쪽에는 별도의 담장을 돌려 별당 공간을 형성하였는데 외부와 단절된 그윽한 후원이다. 작지만 멋스러운 연못과 수석들, 소나무와 상수리나무·산수유나무·대나무 등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소우당 별당은 '영남 제일의 정원'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소우당 옆에는 학하(鶴下) 이순발(李順發)이 19세기경 건립한 학하고택이 있고, 다시 그 옆에는 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이 1803년에 지은 운곡당이 위치한다. 사랑채에 걸린 운곡당의 현판은 운곡 선생의 4세손인 이홍이 18세 때 쓴 글씨다. 운곡당과 담장을 공유하고 있는 집은 죽파(竹坡) 이장섭(李章燮)이 1900년경에 건립하였다는 점우당이다. 소우·학하·운곡은 형제이고 죽파는 소우 이가발의 증손이다. 삼 형제와 후손의 집이 둥글게 곡진 흙돌담 따라 의좋게 당당하다.

◆ 산운생태공원

점우당 고샅길 끝에 밭이 펼쳐지면서 마을의 동쪽 입구가 시원하게 열린다. 밭 너머 길가에는 산운생태공원이 자리해 있다. 공원은 원래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개교한 산운초등이었다. 당시 학교 건립을 위해 기성회를 조직해 기금과 곡식을 모았고, 산운의 재력가 이태대가 거액의 대지를 기부해 부지를 확보했다고 전해진다. 학교는 3천71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5년에 폐교되었다. 그리고 2001년부터 5년에 걸쳐 자연 학습장 및 전시장이자 휴식처인 생태공원으로 변모했다.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생태관 앞에 독립운동가 이태직 선생의 기념비가 서 있다. 내부에는 지진과 생명의 기원 그리고 지구의 탄생을 살펴보는 전시실, 인류의 진화 과정과 동식물의 분포를 알아보는 전시실, 공룡의 연대기와 화석을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다. 또한 산운마을의 유래와 민속유물을 전시한 마을자료관이 있고 의성군 유래와 특산품 관광 코스 및 지역 행사를 알 수 있는 홍보관이 있다. 옛 운동장에는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연못과 정자·징검다리·분수 등이 조성되어 있고 50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풀·꽃들 속에서 공룡들이 귀엽게 웅성댄다. 산운생태공원 앞길은 수정계곡으로 향한다. 길 끝에 금성산과 비봉산이 나란히 또렷하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의성군지. 의성문화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의성의 독립운동사. 이상현, 의성 조문국 향사의 전통창출과 지역 정체성 형성, 안동대, 2004.

공동기획지원 : 의성 조문국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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