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폰다이트(Phoneddite)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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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6   |  발행일 2022-07-06 제26면   |  수정 2022-07-06 06:49
폰생폰사 고도정보사회
빈익빈부익부 조장하는
폰을 공공의 적으로 지목한
폰 거부 운동 우려 있으니
폰의 양면성 잘 조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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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이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이 마법의 기기가 쥐어져 있었다. 집과 차, 심지어 결혼과 직장은 없어도 어찌 견디겠는데 '이게 없으면 절대 안 되지'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또 하나의 '만국공용어'였다.

'스마트폰'(이하 폰) 이란 창세기가 열린 걸까. '폰 없으면 삶도 없다'고 여긴다. 폰에 살고 폰에 죽는 '폰생폰사'의 시대. 성경·불경·코란은 달라도 폰은 동일하다. 누군가는 폰을 신(神)이라 여긴다. '갓폰(Godphone)'.

사람은 떠나도 이놈만은 떠나지 않는다. 머지않아 관 안에 부장품으로 들어갈 것 같다. 덕분에 추억의 사진 앨범도 사라지고 있다. 파일로만 존재하는 내 이미지. 폰이 사라지면 나의 실존도 사라지는 셈.

'폰질'을 잘하면 단숨에 거부가 된다. 예전에는 공장이 갑이었는데 이젠 폰이 갑이다. 수도공고 출신의 김봉진, 그는 네이버에 입사했다가 바로 퇴사. 가구 디자인 사업을 말아먹고 마지막 회심의 일격으로 던진 배달의 민족이 대박 나 10년도 안 돼 억만장자가 된다. 예전에는 차근차근 부자였는데 이제는 '단숨에 부자시대'다.

폰은 마법사이다. 지구 반대편 어느 도시라도 인공위성의 눈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책에 없는 세계사의 이면을 고수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다. 책에도 없는 생활의 달인의 깨알 정보도 무궁무진하다. 대학은 날로 초조하다. 하지만 폰이 주는 인문학은 휘발성이 강하다. 떠벌리기만 하지 진중함은 없다. 폰족들의 댓글인문학과 카피인문학. 무엇이 내 지식인지 분간 못한다. 주장과 해석만 난무할 뿐…. 폰의 담론을 '절대적 진리'라 여기고 자기와 동일시한다. 결국 특정 유튜버의 프레임이 '덫'이 된다. 그게 '좀비지식' 아닌가.

빅데이터를 제어하는 구글 AI가 지금 이 순간도 개인별 취향에 맞는 동영상을 눈앞에 데려다준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인이 주는 모이(콘텐츠)를 잘 받아먹는 가금류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폰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도시도 없고 농촌도 없다. 걸어가다가도 문득, 누워 자다가도 문득 쳐다보는 저 심원한 액정화면, e메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블로그 등이 위성처럼 내 주위를 돈다. 저놈을 굳이 '빅브라더(Bigbrother)'라고 풍자할 이유도 없다. 지옥과 천국이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폰 안에 다 들어있다.

세상의 부는 폰과 연결된 IT(SNS) 재벌한테 집중된다. 흥미롭게도 폰이 등장하면서 '청춘경제'는 결딴 국면이다. 결혼·직장·집도 포기. 어느 날 자신의 불행이 폰 때문이라고 우긴다면? 1811년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파괴운동인 '르다이트(Luddite)'와 같은 '폰다이트'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폰 때문에 '폰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거로 합세, 국가와 대기업 상대로 천문학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헌법소원 같은 것 말이다. 폰이 인류의 희망이겠지만 어쩜 절망만 남기는 신 판도라 박스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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