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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무 경북중고총동창회장 |
대구는 경북과 함께 나라의 위기 때마다 남다른 희생과 역할을 했던 지역으로 손꼽힌다. 긴 역사 속 국난의 순간을 조금만 살펴봐도 그렇다. 가장 가까이는 6·25 전쟁에서 다부동전투와 목숨을 건 낙동강 전투에서 숱한 희생을 치르고도 끝까지 방어선을 사수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나라를 구해냈던 역사가 있다.
좀 더 올라가면 몸서리나는 일제강점기가 있다. 이 암흑시기에도 대구경북 사람들의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투쟁은 빛났다. 무자비했던 약 35년간의 일제 총칼 무력 탄압에 굴하지 않고 광복 때까지 항일 투쟁 대열에 앞장선 대구경북인들의 독립운동 역시 돋보였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경성(서울), 평양과 함께 3대 도시였던 대구는 일찍부터 항일과 저항의 터였다. 대구는 이미 1910년 경술국치에 앞서 1907년 국채보상운동으로 항일 기치를 높였다, 1915년에는 1910년대 최대 비밀 항일 무장투쟁 조직인 (대한)광복회가 대구에서 결성됐다.
항일 투사에 대한 사형집행이 난무하던 엄혹한 1910년대 무단통치 한 가운데 대구 달성공원에서 출범한 (대한)광복회는 1918년 발각될 때까지 친일파 처단 등으로 일제와 부일(附日) 세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또한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대구에서는 학생과 젊은이들이 3·8만세운동과 독립운동의 주축이 됐다. 이들은 대구의 항일저항 정신을 이어갔다.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와 대구사범학교, 계성학교, 대구상업학교, 신명여학교 등 대구 학생들의 희생과 독립투쟁은 뒷날 대구2·28학생민주화운동으로 계승됐다.
오늘날 경북중·고등학교총동창회가 학교 안에 조성한 '경맥의 혼 동산'에 6·25 참전학도병 기념조형물과 2·28민주운동 기념조형물을 세운 데 이어 독립유공 서훈 지사 7명 등 독립운동 동문을 기리는 조형물 건립도 추진하는 까닭이다. 전쟁의 국난 극복과 민주화운동, 국권회복의 독립운동에 동참한 동문 선배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계승함으로써 학교 정체성 강화의 계기가 될 수 있어서다.
우리 근현대사에 기록된 대구의 이런 역사를 되돌아볼 일제강점기 대구의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 자산은 결코 묻혀두고 버릴 수 없다. 게다가 대구의 독립운동 역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흔적이 바로 대구감옥(형무소)이 아닌가. 일제 당시 사법제도로 대구에 2심 재판소인 대구공소원(복심법원)이 위치한 탓에 영호남과 제주도, 강원도와 충청도 일부 지역 독립운동 애국지사들까지 대구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 집행으로 순국했고 또한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다.
대구의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감옥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만도 206명(서훈자 202명)에 이른다. 또한, 수감 됐던 독립운동가는 연구 자료가 없어 그 수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대구감옥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대구감옥보다 순국 독립운동가가 적은 서대문감옥(형무소)이 오늘날 국가 관리 역사관으로 개관돼 연간 방문객 70만 명이 넘는 현실과는 너무 달라 대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대구에서는 2020년 7월20일 대구독립운동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필자와 함께 우리 동창회 차원에서 지지와 지원에 나서 지금도 필요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홍준표 대구시장은 새로운 대구의 출발을 위한 '대구의 변화'를 선포했다. 이번 기회에 대구의 독립운동 역사 문화자산을 바탕으로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하여 대구 정신을 되찾고 이를 계기로 대구의 담대한 변화까지 이끌어 낸다면 이 또한 뜻 있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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