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윤석열 정부의 복고주의

  • 박규완
  • |
  • 입력 2022-07-14   |  발행일 2022-07-14 제22면   |  수정 2022-07-14 06:54
1961년 원훈 꺼내든 국정원

행정안전부 경찰국 부활은

31년 전으로의 과거 회귀

법무부 전횡·구태 인사 시전

국정 復古 개악 개연성 커

[박규완 칼럼] 윤석열 정부의 복고주의
논설위원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원훈을 교체했다. 신영복 글씨체가 정보기관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국정원이 밝혔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년간 복역한 신영복의 전력이 원훈 교체의 결정적 이유로 판단된다. 문제는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때의 원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원했다는 것이다.

61년 전의 원훈으로 돌아간다? 복고(復古)도 이런 복고가 없다. 무엇보다 문구가 쌈박하거나 개운하지 않다. 음침하고 구태의연하며 촌티까지 난다. 음지에서 일한다? 국정원 직원들이 '어둠의 자식들'인가, 아니면 암수를 동원해 비밀공작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창설 초기 중앙정보부는 정치공작을 기획·실행하고 정치자금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테면 군사정권 창출 공작소였다. 김대중 납치, 장준하 추락사, 김형욱 파리 피살 사건 등 온갖 의혹의 흑역사 또한 중정의 일그러진 흔적이다.

한데 그 시절의 원훈을 끄집어낸다? 구각(舊殼)을 다시 걸치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쭉쭉빵빵 고성능 차들이 널렸는데 1970년대의 '포니'를 타겠다는 꼴이다. 괜찮은 원훈을 만들 실력이 없다면 차라리 공모라도 하라. 직전 원훈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은 평범하지만 그나마 '겸손'이 깔려 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국정원 1급 국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 내며 점령군 행세를 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과거 회귀는 이뿐 아니다. 경찰제도개선자문위의 권고대로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부활하면 31년 전으로 돌아간다. 경찰 지휘규칙을 제정하면 행안부 장관이 직접 경찰을 지휘하고 인사·징계·감찰에 관여할 수 있다. 경찰 고위직에 대한 인사 제청권과 징계 요구권을 갖는다. 강력한 그립을 쥐겠다는 포석이다. 당연히 정부·여당에선 민주적 통제로 미화한다. 하지만 중립성·독립성을 침해하는 직접적 통제, 조직에 의한 행정적 통제를 우리는 민주적 통제라고 하진 않는다. 경찰국 부활과 경찰 지휘규칙 제정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암묵적 경찰 통제보다 훨씬 노골적인 통제다.

법무부도 복고 행정을 시전했다. 취임 후 40여 일 동안 검찰 인사를 세 번이나 단행한 한동훈 장관이 주역이다. '총장 임명→검찰 인사'의 선후 공식을 파괴한 검찰총장 패싱 꼼수였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찰청법 34조는 완벽하게 뭉개졌다. 취임 다음 날 단행한 검사장급 인사는 검찰인사위원회도 거치지 않았다. '전횡'과 '구태'의 전형이다. 윤석열 정부가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장관의 편법 인사에 대해 "책임 장관으로서 인사 권한을 대폭 부여했기 때문에 아마 우리 법무부 장관이 아주 제대로 잘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책임 장관이 맞다. 한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경우는 사뭇 달랐다. 이 장관이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 방침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윤 대통령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며 뒤집었다. 담당 장관이 말한 게 공식적인 게 아니라면? 이러고도 책임 장관? 책임 장관도 끗발 나름인가.

예술이나 패션, 유행의 복고는 아련한 과거의 향수에 젖게 한다. 하지만 국정의 복고는 개악으로 흐를 개연성이 크다. 권력기관의 복고주의는 더 위험하다. 피터 드러커는 "계획이란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는 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여 지금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정부 5년 계획엔 '미래'가 녹아 있을까. 국정은 '복고'보다 '전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