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김소월 /'첫 치마'

  • 송재학 시인
  • |
  • 입력 2022-08-08   |  발행일 2022-08-08 제25면   |  수정 2022-08-08 06:48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 지고 잎 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치마를

눈물로 함빡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김소월 /'첫 치마'


1921년 4월9일 동아일보에 실린 김소월의 시 '첫 치마'는 이후 시집 '진달래'에 상재된다. 조수미의 가곡으로 유명해진 '첫 치마'는 1920년대 갓 시집간 여성적 화자의 평안도 정서가 처연하다. 굽이굽이 곡절을 감정으로 잡아내면서 피아니시모의 감정은 점점 여리고 애달파져서 결국 눈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왕국에 도달한다. 그 눈물은 봄과 꽃에 기대기 전에 이미 마음에서 돋아났기에 더 애달프다. 그러니까 당시 이미 우리의 언어는 몇 겹의 속살을 가지면서 생활이라는 감정을 노래해 왔다. 소월의 언어는 높낮이가 평이하고 단순하되, 그 말이 다시 간절하고 곡진하여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재구성되는 놀라운 언어체험이다. 소월의 많은 시가 노래로 자꾸 변주되는 것은 그 안의 리듬과 언어가 익숙하면서도 비범하기 때문이리라. 소월의 노랫말들은 놀랍고 두려운 존재감이어서 무시로 등이 서늘하기만 한다. 영혼이 얕은 내가 영혼이 깊은 물가에서 물소리를 듣는 셈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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