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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문화평론가 |
언짢은 독일인의 기분은 우리에게 일어났던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몇 해 전 삼성 라이온즈의 4번 타자 최형우 선수가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그는 동시에 묘한 인터뷰를 해서 대구 야구팬의 목덜미를 잡게 했는데, 대충 이런 것이었다. "삼성에서 약간의 소외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나는 대구 출신이 아니다." "(대구에서는) 환호 같은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어 가지고." 당시 이 발언들의 파장은 지금 독일 사람의 손흥민 선수를 향한 약간의 불쾌감 토로와는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각종 커뮤니티나 SNS는 최 선수를 향한 삼성 팬의 성토로 가득하기에 이르렀고, 대구에서 벌어진 올스타전에서는 관중들이 최 선수에게 집단 야유를 퍼붓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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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삼성 라이온즈의 4번 타자에서 기아 타이거즈로 이적한 최형우 선수. 〈영남일보 DB〉 |
손·최 두 선수가 화났던 이유는 호모사피엔스가 느끼는 '감정의 가성비'가 지독하게 나빠서 발생한 일일 터다. 인간의 뇌는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을 훨씬 더 자세하게, 또 오래 기억하도록 진화해 왔다. 우리의 해마는 불쾌한, 두려운, 부끄러운 기억은 재빨리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편도체로 옮겨 각인해 버린다. 이러한 기능은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는 동물의 생존확률을 높여주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을 쉽게 불행하고 신경질적이며 우울한 사람으로 만들기 일쑤다. 사랑받고, 응원받고, 격려받았던 수천 차례의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불쾌했던 몇 번의 기억만을 또렷하게 기억해 내기 때문이다.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의 불합리한 가성비는 스타에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의 인터뷰를 읽는 팬들에게도 그것은 똑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손흥민 선수는 지금껏 독일 팬을 위해 수많은 립 서비스를 했을 것이다. 최형우 선수 역시 대구의 야구팬을 위해서 마찬가지의 치레들을 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제 기억되지 않는다. 기억되는 것은 오로지 '기분 나쁜 인터뷰' 딱 하나. 쌓는 것은 어려워도 무너뜨리는 건 한순간이다. 이 이치를 안다면 스타급 선수는 언사에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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