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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에 억양이 강하게 살아있는 것이 말을 사용하는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시장에 가면 상인들끼리 주고받는 말에서 소리의 높낮이가 의사소통의 결정적 수단임을 느낀다. 내용을 아무리 정확하게 말한다고 해도 억양이 제거되면 시끄럽고 복잡한 현장에서는 의미 파악이 힘들다. 내가 아무리 (표준어로) 크게 말해도 상인들이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 내륙 도시보다 항구 도시나 농촌의 사투리가 억양이 센 것도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말은 입을 통해서 나오지만, '소통'은 결국 눈빛과 몸짓이 동반되는 총체적인 일이다. 그러니 소리의 높낮이가 극적으로 연출되는 사투리로 말하기는 제법 근사한 소통방식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투리는 지역밀착형, 생활밀착형이다. 문장가 이태준의 말처럼 "언어는 철두철미 생활용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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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롱잉 노웨얼' 표 |
소리의 잠재성 무궁무진한 '한글'
글자 배열 고도의 시각적 설계 자랑
노은유 '소리체' 디자인 프로젝트
언어의 다름 인정하며 한글 원리 주목
소리 반응하는 글자의 발산 과정 담아
언젠가 인터넷에서 경상도 사투리 능력고사를 본 적이 있다. 열다섯 문제 중에서 아홉 개를 맞췄다. 결과는 딱 중간인 5등급. '뭐뭇나'(뭐라도 좀 먹었니? 배고프지 않니?)와 '뭐뭇노'(어떤 음식을 먹었니?)가 다른 뜻이라는 사실에 감탄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다시 풀었더니 결과는 만점, 1등급이었다. 학생들은 잠시 뿌듯해했다. 그런데 출제 지문을 생생하게 읽어달라는 나의 부탁에 스무 명의 학생들은 멈칫멈칫했다. 공식적으로 읽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일상에서 사투리로 말하지만 글로 써본 적은 없다고 한다. 글로 쓰이지 않았으니 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 사투리는 아직 문자화되지 않은 언어로군! 사투리를 문자로 적어서 보면(사투리를 시각화하면) 무척 낯설고 새롭다. 어째서 사투리를 문자로 쓰지 않는 걸까. 종종 문학작품에서 현장감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등장인물의 입말 그대로 사투리를 적기도 하지만, 일상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다. 표준어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그 힘이 막강하다. 표준을 따르지 않으면 비표준이 되고, 이는 촌스러운 것이고 그것은 교양있는 중산층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런 횡포가 어디 있을까. 행여라도 사투리가 표준어로 대체되어버린다면 문화적 손실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다양한 어휘와 표현, 소리가 투영되어 있는 사투리는 한국어의 보고(寶庫)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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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 스물여덟 글자 중에서 현재 우리 문자 생활에서 사라진 글자가 있다. ㆁ(옛이응), ㆆ(여린히읗), ㅿ(반시옷), ·(아래아) 등 네 글자는 더는 사용하지 않는 글자이다. 이 글자를 다시 활용한다면 훨씬 섬세하고 풍성한 소리를 시각화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혹여라도 문자생활이 복잡하고 어려워질까? 그렇지 않다. 한글은 그 가짓수가 임의로 나열되는 글자가 아니라 소리의 유사성이 형태의 유사성으로 연결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의 제자원리에 기초하면 읽기 어렵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글자 디자인도 가능하다.
이처럼 한글을 만든 원리에 주목한 디자인 프로젝트가 있다. 한글 폰트 디자이너 노은유는 '소리체'(2021년)를 디자인했다. '우리말에 없는 외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새로운 한글 프로젝트'다.(nohtype.com) 일본어, 영어, 독일어, 불어 등 다양한 발음을 가능한 대로 원음에 가깝게 한글로 쓰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특정 언어에 다가가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언어의 다름을 시각적으로 명징하게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수많은 소리를 글자에 담아내는 수렴의 과정이 아닌, 글자가 다양한 소리에 반응하는 발산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소리체의 가치를 파악한 전가경은 사진책 '빌롱잉 노웨얼(Belonging Nowhere)'(사월의눈, 2022)을 기획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어떤 외국어도 한글로 완벽하게 표기할 수 없다. 발음 대상으로서의 외국어는 언제나 우리의 혀에서 어설프게 미끄러지기만 할 뿐이다. 원음에 제아무리 가깝게 발음한다고 한들 해당 언어가 모어인 사람의 발음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하나의 인식체계이자 사회구조가 언어라면, 특정 언어를 발음하고 다가서려는 시도 그리고 다시금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퀴어 페미니스트들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소리체의 '빌롱잉 노웨얼'은 그렇게 '자리 없음'의 상황을 시각과 청각으로 재현한다."
누군가는 사투리를 표기하기 위한 새로운 한글 프로젝트도 시도해볼 만하다. 서울을 벗어나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지역의 사투리를 듣다 보면 글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하고 까다로운 소리가 수없이 포착된다. 소리를 유심히 살피면 그것을 표기할 수 있다. 제주에서는 아직 ·(아래아) 글자를 사용한다. 표준어의 그늘 아래서 어쩌면 우리는 소리와 형태를 대하는 언어 감각이 둔해졌을지도 모른다. 말과 글자를 다루는 일을 하는 디자이너로서 사투리와 한글 표기 방식은 매력적인 연구와 실험의 대상이다. 사투리는 촌스럽고 교양 없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지리와 기후, 역사적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삶의 문화이다. 문화의 다양성은 어디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스스로의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글은 '디자인된 문제들'(쪽프레스, 2022)에 실린 필자의 글을 고치고 다듬어서 쓴 것입니다.)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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