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정치퇴행과 적대적 공생

  •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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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5   |  발행일 2022-08-15 제21면   |  수정 2022-08-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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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다. 국민의힘은 최고위원회에서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소집 안건을 의결하고 전국위원회에서는 당 대표직무대행이 비상대책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당헌을 개정하고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최고위 의결 당시 이미 배현진 의원과 윤영석 의원은 최고위원 사퇴를 밝힌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의결정족수를 채웠다. 이준석 대표는 이러한 일련의 절차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청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당 소속 단체장의 '중대한 잘못'으로 발생한 재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도록 하는 당헌 제96조 규정을 개정해서 지난해 4·27 재보선에서 후보를 냈으나 패배했다. 지난주에는 '부정부패 혐의 당직자의 검찰 기소 시 당직자의 자동 직무정지'를 규정한 당헌 제80조에 대한 개정 청원에 대해서 비상대책위원회가 검토한다는 방침을 밝힘으로써 개정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권 유력 후보인 이재명 후보가 이에 대해 긍정적 의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당의 주류가 이준석 대표를 몰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당의 근간이 되는 규정을 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명분으로 바꾸고,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를 보호하기 위해 명분 없는 당헌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여당은 특정인을 몰아내기 위해, 야당은 특정인을 감싸기 위한 수단으로 당헌 개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여야 정당의 이러한 행태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정당 내부의 권력투쟁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수 없다. 현실정치는 결국 권력정치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고, 이에는 여러 수단이 동원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정상적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사회경제적 이슈와 정치적 현안을 담론으로 이슈화하고 이에 대한 대안의 제시나 정책적 수단의 발굴을 통해 당내 지지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국민의힘이 당 지지율 하락과 여권의 총체적 난맥을 해소하기 위해 비대위 구성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결국 이 대표의 복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절차로서 일련의 절차를 진행한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민주당 당헌에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공정한 사회'를 열어나갈 것이라는 조항이 있다. 민주당 당헌 개정의 명분은 정권의 무차별적인 야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에서 당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과도한 논리로서 상식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5공 정권도 아니고 권위주의 정권도 아닌 상황에서 공안정국과 사정정국을 조성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한계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후보에 대한 수사가 여러 차원에서 진행되는 상황에서 당 대표 당선이 유력한 이 후보가 당권 장악 이후 그동안 제기된 혐의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질 확률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심 역시 합리적이다. 따라서 대표 경선 기간 제기된 당헌 개정 요구의 순수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고 명분 또한 궁색하기 짝이 없다.

당헌은 당의 헌법과 같은 것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특정 목적을 위해 당헌을 바꾸고 당헌 개정을 당내 주도권 확보와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은 정당정치를 후퇴시키는 정치적 퇴행의 전형이다. 당헌이 당내 파워를 가진 세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정당정치를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모든 사안에서 대립하고 있는 여야가 각기 다른 당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당헌이 권력갈등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정치의 '적대적 공생'은 현재진행형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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