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삶에 관한 단상

  • 박성혜 (주)판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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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6   |  발행일 2022-08-16 제27면   |  수정 2022-08-16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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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혜 <주>판권연구소 대표

얼마 전 외국의 한 여행지에서 은퇴여행 중인 중년 어르신을 뵌 적이 있다. 호탕한 그분은 내게 "고상하게 표현해 은퇴지, 나이 드니 짤린 거다"라며 허허 웃으셨다. 출신 대학과 근무하던 지역 등 서로 공통점이 있어 제법 오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예순을 앞둔 그는 누구나 알 만한 대학, 누구나 알 만한 고소득 직종 회사를 다닌 엘리트였고 은퇴라고 일컫는 강제 퇴직을 당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나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하며 이제 자식들 결혼만 시키면 할 일 다 끝냈다고, 인생 2막을 위해서 그 준비 여행을 하고 있다 하였다.

예순을 앞둔 그와 31세의 나. 그분이 살아온 인생 중 고작 반토막만을 살아온 나는 문득 서글퍼졌다. 결코 그에 대한 동정의 마음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일종의 현타(?) 같은 것이 왔달까. 삶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보았다.

'나는 왜 사는 것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났고,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살아있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유아기 때엔 열심히 밥을 먹고 대소변을 가려야 했으며 청소년기엔 열심히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해야 했다. 성인이 되면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하고 나면 교과서 같은 인생을 살기 위해 결혼을 해야 했다. 결혼 뒤엔 출산, 출산 뒤엔 육아. 그러다 이제 한숨 돌린다 싶을 때 부모님은 아파온다. 그뿐인가, 이제 머리가 큰 자식은 본인도 결혼을 하겠다며 손을 벌려온다. 그때 내가 아직 재직 중이라면 다행인 것이고, 이것이 은퇴 후의 일이라면 막막할 것이다. 그렇게 게임의 퀘스트를 깨듯 모든 해야 할 역할들을 하고 나면 그제서야 우두커니 서서 스스로를 거울에 비춰보고 희끗한 머리와 눈가의 자글자글 한 주름, 왜소해진 어깨, 조금 더 줄어든 키의 나를 보고 조금은 서글퍼질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은퇴시기는 점점 더 당겨지고 있으며 사회에서 연장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도태되고 낙오된, 더 이상 제 몫을 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회사마저 그만두고 나면 공허함과 더불어 이제는 인생에 회의감마저 올 것이다.

너무 주어진 해야 할 일들만 해오며 살아온 거 아닌가 두려워졌다. 성냥에 불을 붙이면 화르르 타오르다 순식간에 재로 사라지는 것처럼 나의 인생을 다 화르르 태워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걱정마저 들었다. 아직 30년이 더 남았는데 얼마나 나를 더 태워야 한단 말인가.

어르신과 헤어지고 한동안 지인들에게 은퇴 후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책을 쓰고 싶다, 봉사를 하러 다니고 싶다, 여행을 다니고 싶다 등 다양했다. 사실 지금도 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작은 결심을 해본다.

'아끼지 않겠노라고'. 행복할 시간들, 누리고 싶은 것들을 더 뒤로 미루지 않고 지금 틈틈이 만끽하겠다고 말이다. 은퇴는커녕 그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라고 하지 않나. 그러니 더 틈틈이 최선을 다해서 지금 느껴봐야겠다.

은퇴여행 중이던 중년의 그는 품위 있고 근사했다. 인자한 미소에 여유로움이 흘러넘쳤다. 내 앞으로의 30년이 그와 같은 품위와 우아함을 가질 수 있도록 꺼지지 않는 열정과 더욱 향기로운 일들로 가득 차길 소망해본다. 박성혜 <주>판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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