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병태 (부산예술대 연극과 교수/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
안동은 한국 유교 문화의 본고장이며, 경주 다음으로 전통문화 유산이 풍부한 고장이다. 마애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을 비롯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국내 최고의 목조 건물인 봉정사, 도산서원, 병산서원, 하회마을 등을 품고 있어 우리나라의 자랑이기도 하다. 1963년 안동시로 승격된 이 도시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고창군으로 개칭된 이후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한 892년부터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936년까지 45년간의 후삼국 시대를 역사에서 물러가게 하고 분열된 민족을 재결합하는 통일 고려를 탄생시킨 발판을 마련한 고장이 고창(오늘날 안동)이다. 역사적·지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던 안동에 이제 공연예술의 움직임이 새롭게 꿈틀대고 있다. 21세기 문화예술의 한 장르인 실경 뮤지컬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왕의 나라 시즌Ⅱ '삼태사와 병산전투'가 바로 그것이다.
고려 건국 당시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929년 12월에 있었던 '고창(병산) 전투'를 재조명한다. 고려와 후백제가 후삼국의 패권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던 시기,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막아 낸 공로로 삼태사(三太師) 칭호를 받은 김선평, 권행, 장정필과 전쟁 없는 태평성대를 꿈꾼 고창 백성들의 치열했던 삶을 담았다.
안동민속촌 성곽 공연장은 무대 세트가 입구부터 성벽으로 꾸며져 후삼국 시대 치열했던 상황을 묘사하듯 관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입구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뮤지컬 삼태사'란 글귀가 비디오 매핑으로 성곽을 비추고 있고 무대 양 측면이 성벽으로 세워져 있으며 넓고 잘 정돈된 객석은 쾌적하게 실경뮤지컬을 관람하기에 적합해서 더욱 기대를 부풀게 해 주었다.
공연 첫날, 막이 오른 1시간 뒤부터 쏟아지는 빗속에도 배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 내내 소름 돋는 연기와 가창력으로 안동 민초들의 애환을 그려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이내믹하고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비디오 매핑과 조명, 그리고 특수효과와 화려한 의상과 군무, 양념 같은 마을 사람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관객들을 극 중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박진감 넘치는 극적 리듬과 템포는 눈을 무대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게 만들어 안동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으로 거듭나게 했다.
공연예술의 힘은 참 대단한 것 같다.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함께 하지는 않지만, 객석에서 극 속에 몰입하여 그 시간과 공간을 배우들과 함께 즐기고 체험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80여 명의 등장인물을 입체적·유기적으로 연결해 앙상블을 만들기 위한 연출력은 대단한 능력이다. 절반이 지역예술인들로 구성되고 연출, 극본, 스태프까지 대다수가 안동 사람들로 구성된 지역인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뮤지컬 공연이었다.
뮤지컬은 스펙터클한 공연예술이다. 관객들에게 볼거리 제공을 위해 화려한 무대장치가 필요하기에 상당한 제작비가 필요하다. 실경뮤지컬의 특성상 다양한 무대장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과 장치가 없기에 그 부족함을 3D 비디오 매핑으로 대신하였는데 그 선택이 정말 탁월했다.
한여름 밤의 무더위와 삶의 피로를 한 방에 날려준 비타민과도 같았던 실경뮤지컬 왕의 나라 시즌Ⅱ '삼태사와 병산전투'가 2023년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할지 그 공연이 벌써 기대된다.
손병태 (부산예술대 연극과 교수/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