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그러려니 전쟁!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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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4   |  발행일 2022-08-24 제26면   |  수정 2022-08-24 06:54
이념보다 자본이 甲인 세상

전면전이던 지난 세기 전쟁도

핵폭탄 품은 금세기엔 '엄포용'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절벽 앞 없는 자의 '생계'

[동대구로에서] 그러려니 전쟁!
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서 트로트 가수로 활동 중인 한 레오(본명 레오니드 두켈스키). 그가 지난 4일 대구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열리는 '대구 톱 밴드 콘테스트'에 참가해 자국 국기를 흔들며 신곡 'No War'를 불렀다.

이쪽에서는 전쟁인데 반대쪽에서는 '공연'. 요즈음 전쟁이 갑자기 '특수 비즈니스'로 보였다. 펠로시의 대만방문으로 인한 중국의 무력시위, 북한의 습관성 핵실험, 우주 만한 유정(油井)을 공깃돌처럼 갖고 노는 산유국, 유대인의 곡물시장 주무르기, IT강국이 리더하는 新제국주의…. 사람들은 SNS로 중계되는 각종 전쟁을 대충 '그거려니' 하고 받아넘긴다. 사실 사이코패스적 범죄행위가 금세기 전쟁의 잔학상보다 몇 차원 더 섬뜩한 수위를 보인다. 핵폭탄을 전제로 한 선전포고. 정치적 액션, 아니면 엄포용? 자본이 '자살'보다 수위가 높으니 폭탄도 자본의 서자 아닌가.

21세기 전쟁은 삼국지 적벽대전처럼 명운을 건 전면전을 원치 않는다. 이념이 시시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제국주의 시대 때 이미 세계 각국의 지하자원을 다 분석해 버렸다. 민족주의에 자본주의를 장착(제국주의)해 땅따먹기를 오지게 벌였다. 한때 영국은 세계 영토의 4분의 1, 60개 이상의 영연방을 형성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오프라인을 전제로 벌이던 지상최대·절체절명의 전쟁이란 게 한물간 유행상품이 되고 만다.

'몰살'을 전제로 한 지난 시절의 '악다구니 표 전쟁'도 수명을 다한 것 같다. 이념형 전쟁의 종언! 말하자면 후쿠야마식 역사의 종언 아닐까. 자본이 최고 승자가 된 거다. 타국을 학살하기보다 자국 상품을 사주는 소비자로 굴복시키면 끝이다. 경제 독점, 그게 '현대판 학살'이다. 물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좀 다른 비극이겠지만.

아무튼, 이제 한국은 엄청난 나라다. 한국이 곧 세계랄 수 있다. 먹이사슬로 다 연결된 탓이다. 세계 9위권 무역대국인 한국이 초토화된다면? 지구촌 무역망이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러니 북한이 한국을 막가파식으로 치기 어렵다. 한국을 침공? 1950년대 한국 경제라면 망해도 그만이다. 그런데 미국과 견원지간인 중국과 소련 때문에 안 망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한국의 수출·수입품은 열강과 생사고락을 함께한다. 한국 문제가 곧 열강의 문제다. 그게 한국의 행(幸)이자 곧 불행이다.

예전 전쟁은 너무나 아비규환, 그리고 암울했다. 비장·장렬했다. 비분강개였다. 하지만 지금 전쟁은 군인보다 화력의 각축장이다. 그래서 전쟁은 목적적이지 않고 다분히 '수단적'이다. 전쟁이 '장식품', 하나의 '핑계' '제스처' '마케팅' 같다. 라이브공연 같은 전쟁도 다반사다. 관계망에서 조금 멀어진 시민들은 쇼핑도 하고 파티도 벌인다.

일촉즉발, 권토중래, 와신상담…. 그런 버전의 지난 세기의 전쟁을 소환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최전선 돌격대보다 더 강렬한 절벽정신으로 주야 불문, 신호등까지 무시하며 초 단위로 거리를 종횡무진 중인 저 배달족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라. "북한이 쳐내려오면 어떻게 하죠?" 그들은 "저희야 감쏴하죠. 싹 다 망하면 어쩜 이 짓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도 있으니…."

여름휴가의 말미, 잠시 더위 먹은 전쟁 이야기를 소환해 봤다.
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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