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영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
말이나 글은 그것이 가진 원래의 뜻과는 달리 말하고 글 쓰는 사람에 따라 현란하게 변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많은 사람이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해 경계했다. 말과 글이 특권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도 말이나 글의 날카로움은 사람의 목숨을 앗을 정도였지만, 수백 년이 흘러 모든 사람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세상에서는 말과 글의 위세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정치권을 둘러싼 지형을 살펴보면 말과 글이 본래 제 뜻을 잃어버리고 표류하는가 하면, 새로운 의미를 담아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형의 무기가 된 듯하다. 여기에는 유튜브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새로운 소통의 장르가 된 SNS와 속칭 '찌라시'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1인 미디어들이 행동대장을 맡아 '거짓된 말'과 '근거 없는 글'을 퍼트리는 역할을 한다.
이들 매체는 말의 무게감이나 글의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폭로를 더욱 선호하며, 정치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기에 달라붙어 있다.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정당의 일을 자기 잣대로 평가하고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세력을 집결시키기에 안성맞춤의 공간이다.
출처가 명확하지 않거나 근거가 빈약한 이야기를 사실관계 확인 없이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상대방에게 불리하게 편집해 '아니면 말고'식의 글을 올리는 일은 다반사다. 극렬지지자들에 의해 그 사람은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더라도 자신과 한편에 선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상대방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는 것으로 그 글을 올린 목적은 달성했다.
공자가 살았던 3천년 전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았나 보다. 공자는 "道聽而塗說 德之棄也(도청이도설 덕지기야)"라고 말했다. "길에서 들은 이야기를 길에서 떠들고 다니며 옮기는 사람은 덕을 포기한 사람이다"라고. 근거 없이 길거리에서 이리저리 떠도는 이야기를 진실인 것처럼 퍼트려 사회를 혼란에 빠트린 공자시대 지식인들과 요즘 정치인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는 많이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많은 말을 쏟아내고 진실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에 대한 비판이나 논쟁은 허용하지 않는다. SNS에 올린 글에 대한 작은 반박마저도 거짓이라고 폄훼해 버린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이익이 같은 집단에서만 진실로 받아들여질 뿐, 뜻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대되었을 때는 거짓으로서 아무런 힘도 얻지 못한다.
말이나 글이 사람과 집단에 따라 변하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하나의 같은 뜻과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많은 사람의 말과 글로서 작용하고 공론의 장에서 대화가 되어야 한다. 즉, 내가 말하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의 말도 충분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자신의 말이 존중받고 자신의 글이 인정받으려면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해야 한다. 법정 스님도 "요즘 우리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말만을 내세우려고 한다. 언어의 겸손을 상실한 것이다. 잘 들을 줄 모르는 사람과는 좋은 만남을 갖기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말과 글은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지만, 날카로운 칼이 되어 사람들의 목숨도 앗아간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멋대로 글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전영(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