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코모두스와 막시무스

  • 박규완
  • |
  • 입력 2022-08-31 20:00  |  수정 2022-08-31 15:02
용렬한 황제-검투사 비유

이준석의 불경스런 도발

거대정당 헤집는 전투력

갈등 이면엔 공천권 다툼

2024 총선 누가 주도할까

 

[박규완 칼럼]  코모두스와 막시무스

삼국지는 진수의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가 있다. 진(晉)나라의 진수(233~297)가 편찬한 '삼국지'는 정사(正史)로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등 총 65권이다. 간결한 문체와 담백한 서술이 압권이다. 다만 위나라만 제기(帝紀)를 세워 편향성 비판을 받는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봤다는 의미다. 촉나라·오나라는 열전(列傳)으로 기록했다.

 


나관중은 14세기 원말·명초의 소설가 겸 극작가다. '삼국지 연의'는 진수의 정사에 나관중의 상상력이 보태진 '소설 삼국지'다. 연의(演義)는 '사실에 부연하여 재미있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뜻이다.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이 살을 붙이고 윤색하고 가공했으니 역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제갈공명을 지나치게 과장했고 조조는 실체보다 깎아내렸다.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히는 초선은 나관중이 만든 가공인물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장제원 의원을 겨냥하며 인용한 삼성가노(三姓家奴)란 말도 '삼국지 연의'에만 나온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로마 장군 출신 검투사의 굴곡진 삶과 복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그 유명한 '명상록'을 남긴 스토아학파 철학자이자 로마제국 16대 황제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아들 코모두스 시대가 배경이다. '글래디에이터'는 2001년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막시무스 장군역의 러셀 크로를 단박에 스타덤에 올렸다. 영화 전편에 한스 짐머의 음악이 도도히 흐른다. 리사 제라드가 부른 엔딩곡 'Now we are free'는 OST의 백미다. 우리 사극이나 '삼국지 연의'가 역사를 왜곡하듯 영화 '글래디에이터'도 로마사를 많이 비틀었다. 막시무스 장군은 가공의 인물이며, 5현제의 마지막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영화와는 달리 아들 코모두스에게 양위한다. 원로원에서 덕망 있는 인물을 황제로 옹립해온 '5현제 시대'의 불문율을 거슬렀다. 후일 폭군 코모두스는 암살당한다. 아우렐리우스의 세습 양위는 명백한 실패였고 로마 멸망의 시작점이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소환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코모두스, 본인을 막시무스에 비유하면서다. 용렬한 황제와 정의로운 검투사를 대척점에 놓은 자체가 불경(不敬)이다. 멘트도 자극적이었다. "자신감 없는 황제, 경기 시작 전 막시무스 옆구리 칼로 푹". 대통령실과 여당에선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법원이 이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민의힘의 이준석 축출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렸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징계 종료일인 내년 1월 8일 이후 복귀할 수 있을까. 이는 '윤심(尹心)'이 가장 배척하는 시나리오다. 현실화할 개연성이 높지 않다. 국민의힘이 당헌을 개정해 새 비대위를 꾸리려는 것도 이준석 귀환을 막기 위한 포석이다. 윤리위원회의 추가 징계도 복병이다. 아마도 이준석이 윤 대통령의 '체리 따봉' 메시지를 받는 반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외려 경찰의 성 상납 수사 뇌관이 터지고 '빼박' 증거가 나오면 이 대표는 정치 종언(終焉)을 고해야 한다.


"타고난 싸움꾼"(조응천 민주당 의원)이란 평가대로 이준석의 전투력은 옹골차고 알싸하다. 단기필마로 거대 정당을 들쑤셨다. 언어 구사력이 강력한 무기다. 그럴싸한 직유와 은유에다 고사성어를 맞춤형으로 끌어 썼다. '언데드 최고위원' '윤핵관 호소인' 따위의 신조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31일엔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며 영화 '한산'의 명대사를 차용했다.


이준석vs대통령·윤핵관 대립 구도는 행간 읽기가 중요하다. 공천권을 뺀다면 사생결단의 공방을 벌일 이유가 없다. 누가 2024년 총선 공천을 주도할지 그래서 궁금하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공천권을 장악하고 '윤석열 당'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코모두스와 막시무스 둘 다 죽는 게 엔딩 장면이다. 집권여당을 둘러싼 세력들의 역학 구도는 어떻게 귀결될까. 공멸? 공생? 한 쪽의 일방적 승리? 아직은 포연만 자욱할 뿐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다.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