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플레 감축법이든 디플레 촉진법이든 칭호에 어폐가 있으면 어떠랴. 문제는 이 법이 현대차의 뒤통수를 쳤다는 거다. 정의선 회장을 만나 세 번이나 거푸 "땡큐"를 외치며 현대차의 대미 투자에 감사를 표했던 바이든 아니었나. 그런데 지난 8월 발효된 인플레 감축법은 미국서 제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제한했다. 트럼프 뺨치는 바이든의 '아메리카 퍼스트'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이 실리를 위해 신의를 팽개친 꼴이다. '경제=표'라는 인식이 작동했으리라.
세계적 재테크 열풍을 몰고 왔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가 지난달 "부동산·주식·금·비트코인 등 모든 자산시장이 무너지고 있다"며 "생각을 바꿔 부자가 되라"고 말했다. 두 가지 함의가 있다. 하나는 재테크 고수가 내다본 경제 기상도는 '잔뜩 흐림'을 넘어 '퍼펙트 스톰'에 가깝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산 가격이 바닥칠 때 저가 매수의 기회를 잡으라는 조언이다.
기요사키의 진단대로 국내 경제지표도 암울한 통계가 쏟아진다. 8월 무역수지는 94억7천만달러 적자로 1956년 무역통계 작성 이래 최대 폭을 기록했다. '경제 효자'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보다 7.8% 줄었다. 대중국 무역수지는 넉 달째 적자를 이어갔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이다. 모든 수치가 생뚱맞고 이례적이다. 우리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반도체-대중 무역흑자' 루틴이 깨졌다. 진짜 위기다.
강달러 후폭풍도 거세다. 달러가 '글로벌 경제위기의 유일신(神)'으로 격상되는 분위기에 원화 가치는 추풍낙엽이다. 환율은 달러당 1천400원도 뚫을 기세다. '환율 상승=수출 증가'라는 케케묵은 공식은 이제 장롱 속에 처박아야 할 듯싶다. 고환율이 더는 수출의 구세주가 아니다. 외려 수입원자재 가격 앙등, 물가 상승 압박 등 폐해만 촉발한다. 미국이 긴축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뾰족한 방책도 없다.
거시경제 전문가이자 36년간 주식시장에서 내공을 쌓은 김한진 이코노미스트는 "2025년까지 불황이 이어질 수 있으며 그 고통은 예상보다 강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 상황, 어느 모로 보나 복합위기다. 문제는 정부가 위기에 대응할 능력과 의지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다. 윤석열 정부 4개월을 반추해보면 왠지 미덥지 않다.
경제위기 극복엔 야당의 협조가 필수다. 한데 여소야대 구도를 잊은 듯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자극하는 언설을 퍼붓는다. 정기국회 개회 첫날 제1 야당 대표를 소환한 검찰도 눈치 없기는 마찬가지다. 착각하지 마라. 경천동지할 의혹이 불거지지 않는다면 사정정국으로 대통령 지지율 오를 일은 없을 테니. 뻔하디 뻔한 대장동 레파토리는 이제 식상하다. 계속 깔짝대기만 해서야 '강력한 한 방'이 나오겠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민 기대는 이념이 아닌 민생"이라고 강조했다.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윤 정부의 실제 행보는 이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탈북민 강제북송,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린다. 더욱이 2명의 탈북민은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다. 인권 문제로만 재단(裁斷)할 사안이 아니다. 과거 캐기에 몰두할수록 민생과 경제의 기회비용을 상실한다.
국민은 문재인 정부하면 먼저 '부동산 폭등시킨 정권'으로 인식한다. 윤석열 정부도 종국엔 경제로 평가받을 것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의 패업 달성을 주도한 관중은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고 했다. 윤 정부는 출범 초기에 전방위로 경제 경고등이 울리는 상황이다. 엉뚱한 데 헛심을 쓸 계제가 아니다. 오로지 경제에 올인 해야 한다. 빌 클린턴의 짧고도 강렬한 구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경구가 다시 비수처럼 꽂힌다.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