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보수·진보 유전자 섞어 '중용적 정책' 펼쳐라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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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06   |  발행일 2022-10-06 제22면   |  수정 2022-10-06 06:50
현실·환경에 최적화된 정책

이념에 경도되면 해법 불가

유학 '中庸' 심오한 뜻 담겨

하이브리드·퓨전 이미 대세

급변침 금물 완곡히 틀어야

[박규완 칼럼] 보수·진보 유전자 섞어 중용적 정책 펼쳐라
논설위원

흔히 중용(中庸)은 막연히 '중간' '중립' 정도의 말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유학(儒學)에서의 중용엔 좀 더 내밀한 의미가 담겨 있다. 중용을 간명하게 풀이하면 '언제나 도리에 딱 들어맞게 행한다'는 뜻이다. 중용의 중(中)은 도리에 맞게 희로애락을 행할 마음이 준비된 상태를 이르고, 용(庸)은 중의 자세를 항구 불변하게 유지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중용'은 원래 예기(禮記) 49편 중 31편이었으나 송나라 때 주자가 성리학을 집대성하면서 당당히 사서(四書)의 반열에 올랐다.

필자는 '사마천의 慧眼, 文 정부의 愚案'(영남일보 2020년 10월16일자)이란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의 반시장 정책을 비판했다. '산업혁명에 앞장선 국가는 예외 없이 세계사의 주역이 됐고 그 과정에서 개방과 혁신은 불가결한 요소였다. 우리도 '상시적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웬만한 건 그냥 시장기능에 맡기는 게 낫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시장만능주의를 경계한다'(영남일보 2011년 8월1일자)는 칼럼을 썼다. '경제의 글로벌화 진전과 함께 고용 없는 성장과 주주 이윤 극대화로 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국가나 지역사회로 환원되지 않고 있다. 도를 넘은 시장주의는 승자 독식, 경제 양극화를 풀무질한다.'

진보 정권에선 반시장 정책을 도마 위에 올렸고, 보수 정권 땐 과도한 시장친화 정책을 비판했다. 진보든 보수든 정부 정책이 한쪽으로 경도됐다는 의미다. '중용(中庸)'이 결여됐다는 뜻이다. 수요 억제책에만 매달렸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공급정책을 외면하면서 실패했다. '다주택자 징벌주의' 같은 경직된 세제도 아쉬웠다.

윤석열 정부에선 확연히 달라졌다. 종부세 과표를 주택 수가 아닌 가격 기준으로 조정하고 재산세도 완화했다. 기업의 법인세를 인하하고 근로자의 소득세 부담도 덜어준다. 하지만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굳이 25%에서 22%로 낮춰야 하는지 의문이다. 광범위한 감면에 따른 실효세율을 살펴봤는지 궁금하다. 부동산 보유세를 일거에 허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MB정부의 '부자감세 시즌2'가 돼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의 친족 범위를 사촌 이내로 축소한다는데 재벌의 오랜 병폐인 내부거래가 확산될 소지가 다분하다. 4대강 정책 유턴이나 국공유지 매각도 신중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책을 급변침하는 건 금물이다. 세월호도 급변침하다 침몰하지 않았나. 완곡하게 방향을 틀어야 한다. 진보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경제학은 신학이 아니다"고 했다. 보수 정권이 새겨야 할 고언이다. 새뮤얼슨의 말처럼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는다.

필자는 칼럼을 쓰면서 늘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의 정책을 믹싱하면 최적화된 답안을 얻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부 정책에도 '중용'이 필요하다. '중용적 정책'은 그냥 보수와 진보의 중간쯤 되는 정책이 아니다. 중용의 심오한 의미가 '도리에 맞는 언행'이듯 중용적 정책은 현실과 환경에 최적화된 정책을 일컫는다.

부동산 정책이라면 징벌적 과세는 하지 않되 불로소득과 투기엔 물샐 틈 없는 방호벽을 치는 게 중용에 부합한다. 혼합과 융합이 대세인 하이브리드, 퓨전시대다. 유전자도 잡종이 더 강하다. 정책도 진보와 보수 유전자를 섞어야 효율적으로 진화한다. "보드라인에 걸치는 볼 같은 스트라이크를 던져라" '투수의 전설'들이 말하는 황금률이다. 정부 정책도 '볼 같은 스트라이크'가 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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