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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
올해 유독 색깔이 강한 사내들이 많이 죽었다. 시인 김지하, 소설가 이외수, 가수 이동원 그리고 양병집, 실내건축가 박재봉, 최근에는 '만다라'란 장편소설의 작가 김성동, 해박한 지성의 상징이었던 이어령 등이다.
양병집은 김민기·한대수와 함께 유신정권으로부터 철저하게 부정된 진정한 한국 포크 1세대 리더. 70년간, 참으로 포크스럽게 살다 갔다. 부산 출신인 그는 음악의 꿈을 좇아 서라벌예대 음대 작곡과에 입학한다. 부친 반대로 음악학도의 길을 접고 증권사에 입사했지만 '끼'는 잠재울 수가 없었다. 1972년 한 포크 경연대회에 동생(양경집)의 이름으로 참가해 3위로 입상했다. 그때 부른 노래가 밥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잇'에 직접 노랫말을 붙인 그의 대표곡 '역(逆)'이었다. '요지경 세상'을 풍자했다. 이 노래는 김광석이 1996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리메이크하면서 크게 유행한다. 주최 측이 그의 이름을 '양병집'으로 잘못 불렀고 그게 예명이 된다. 1980년대 그가 운영한 음악 카페 '모노'는 밴드 들국화 결성의 모티프가 된다. 말년에 자전적 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도 출간했지만 말년은 우울하고 고독했다. 서울역 앞 지하도에서 혼자 노래 부르는 장면이 유튜브에 공개되기도 했다. 포크뮤지션의 길을 선택한 죗값일까.
건축계의 '밥 딜런'? 그렇게 살다 간 건축쟁이가 바로 박재봉이다. 경북고·서라벌 예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0∼90년대, 실내건축(인테리어)의 한 흐름을 주도하며 핸디환경디자인연구소를 개소한다. 그 문하생이 바로 이용민(고인) 그리고 이병재 등이다. 이병재가 방천시장 안에 지은 유럽스러운 집에 국제적 인지도를 갖고 있는 클래식기타리스트인 이성우가 살고 있다. 이성우, 이병재, 이용민, 울산의 괴짜 시인 구광렬, 영화감독 이명세, 시인 채호기, 음유시인 이무하 등은 죽마고우다. 이성우는 이무하를 위해 올해 음악회를 열어줬다.
아무튼 박재봉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환경'이란 개념을 건축에 투입한다. 대봉동 전상진 패션, 카페 늘봄·가전·풀하우스, 뉴욕피자, 수성못 뉴욕뉴욕, 범어동 아트리움 레스토랑, 빈들교회 등이 그의 작품. 일본의 대표적 건축가인 이타미 준과는 절친이었다. 대충 건축은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건물이 될 때까지 장구하게 오랜 시간, 건축주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지독한 고집쟁이였던 그의 말년 역시 을씨년스러웠다. 앞산 보성맨션에서 빈방처럼 기거했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지난해 회고 사진전(신라 갤러리)을 열어주었다. 저들의 삶을 한 단어로 줄이면 내 갈 길대로 가니, 포크 라이프!
'포크'란 꽃이 여기저기서 풍성하게 피고 있다. 대구 출신 싱어송라이터 박창근, 그는 올해 국민포크싱어로 등극, 지난달 30일 대구포크페스티벌 주 무대에 섰다. 오는 8일 광주에서는 제7회 달빛통맹(대구광주통기타동맹) 광주콘서트 그리고 9일에는 해인사가 달빛포크협회와 손을 잡고 제1회 달빛음악회를 연다. 신개념 산사음악회랄까. 대구 채의진·광주 기드온 밴드가 재즈가수 웅산, 최성수, 주현미, 국악인 남상일 등과 공연한다. 이 음악회는 대구와 광주를 잇게 될 달빛열차 중간 환승역(가칭 해인사역)을 기원하며 영호남 포크뮤지션과 동행하는 취지를 갖고 있다. 이 가을, 포크의 선율이 고인의 넋을 더 투명하게 빚어줄 것 같다.
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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