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닥공'과 공피고아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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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3  |  수정 2022-10-13 06:40  |  발행일 2022-10-13 제22면
정부여당 '이 ××' 확전 택해

감사원 요란해도 성과 미흡

집권세력 2대 국정 추동력

지지율·국회의석 모두 취약

권력은 절제할수록 무게감

[박규완 칼럼] 닥공과 공피고아
논설위원

'닥공(닥치고 공격)'의 원조는 프로축구 전북이다. 전북은 2009년 사상 첫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 원동력이 '닥공'이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7번 정상에 올랐는데 2015년(57골)을 제외하곤 6회 모두 리그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2018년엔 무려 75골을 폭발시켰다.

위기십결(圍棋十訣)은 당나라 현종 때 바둑 고수 왕적신이 정리한 열 가지 바둑 요결(要訣)이다. 부득탐승(不得貪勝·지나치게 승리에 집착하면 이루지 못한다), 공피고아(攻彼顧我·상대방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의 허점을 살펴라), 사소취대(捨小就大·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같은 금쪽같은 경구가 담겼다. 반상(盤上)의 세계에선 부득탐승을 위기십결의 으뜸으로 치지만 공피고아도 그에 못잖다.

전북의 7번 우승은 '닥공'만의 결실이 아니다. 탄탄한 수비가 뒷받침됐기에 '우승 군단'의 면류관을 쓸 수 있었다. 공피고아에 충실한 '닥공'이었다는 의미다.

요즘 정부·여당의 행보도 '닥공'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비속어 발언 대응이 그랬다. 확전을 택했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자막을 조작했다며 MBC를 고발하고, '이 ××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궤변으로 응수했다. 한데 엠브레인퍼블릭 등의 여론조사에선 국민의 64%가 윤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을 '외교적 참사'로 본 반면, '언론의 왜곡'이란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미디어토마토 조사에선 국민 63%가 MBC 사태를 '부당한 언론탄압'으로 판단했다. 또 '날리면'보다 '바이든'으로 들었다는 국민이 훨씬 많았다.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지 않은 '닥공'의 황망한 결과다. 대통령이 사과했으면 일단락됐을 일이다. 침잠했어야 할 '×× 이슈'는 국정감사에서 재점화했다. 논란이 이어질수록 누가 더 쪽팔릴까.

감사원 역시 '닥공' 스타일이다. 감사원의 타깃은 문재인 정부 정책 과오 들추기와 친문 기관장 쫓아내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정권 전위부대를 자처하며 온 공공기관을 들쑤시고 있으나 성과는 신통찮은 모양이다. 요란했던 국민권익위원회 감사는 감사기간을 두 번씩이나 연장하고도 건진 게 없다니. 표적감사 티를 너무 내는 데다 사정역량도 정교하지 못하다. 하수(下手) 행색이 물씬하다. 유병호 사무총장이 대통령실과 내통하는 정황이 언론에 포착되며 망신살까지 뻗쳤다. 이러고도 독립된 헌법기관? 흑역사 이력도 만만찮다. 4차례의 4대강 사업 감사보고서는 정권 입맛에 따라 내용이 오락가락했다.

집권세력의 국정 추동 2대 동력은 지지율과 여당 의석이다. 애꿎게도 윤 대통령은 이 두 가지를 손에 쥐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은 고작 20%대를 맴돌고 국회에선 169석의 민주당이 눈을 부라린다. 하니 국면전환이 필요한 상황. 그래서 '닥공'을 택했을까. 하지만 공피고아에 기반하지 않은 '닥공'은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중도층이 일거에 등을 돌릴 수 있어서다. 23전 23승. 이순신 장군의 혁혁한 전과(戰果)다. 전승의 이면엔 아주 간단한 비책이 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상책'이란 훈계와 맥락이 관통한다.

정부·여당의 '닥공'은 좀 어설프다. 승패 불문하고 마구 들이대는 건 아닌지. 혹시 못 먹어도 고(Go)? 지지율과 국회 의석이 변변찮은 윤 정부다. '닥공'보단 공피고아가 제격이다. 권력은 절제할수록 무게감이 커진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절제를 덕목으로 여기는 대목이 나온다. 직이불사(直而不肆) 광이불요(光而不燿)(곧으나 너무 뻗지는 않고 빛나되 눈부시게 하진 않는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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