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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자유'를 언설하려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비켜가긴 어렵다. 밀은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을 비판하며 소수자를 억압하는 '다수의 횡포'를 특히 경계했다. 자유의 최상위에 '개인의 자유'를 올렸다. 자유를 누리기 위한 책임도 강조했다. 밀은 "아무리 그릇된 견해라 할지라도 그 견해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비판적 의견을 형성함으로써 더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160년 전의 저술이 극단적 진영논리와 포퓰리즘이 횡행하는 작금의 상황에 절묘하게 이입된다.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헌사'란 상찬이 아깝지 않다. '자유론'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함께 서양 정치철학의 3대 필독서로 꼽힌다.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명저 '사회계약론'도 자유 해독서(解讀書)에 속한다. '인간은 자유인으로 태어난다'는 첫 구절이 책의 백미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고 말한 정치학자 토크빌의 자유 논지(論旨)는 짧지만 강렬하다. 신자유주의 전도사이자 통화주의 창시자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이랄 만큼 시장의 자유에 집착했다.
'자유'라면 윤석열 대통령도 한가락 하는, 자유 예찬론자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35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 언급했고 유엔 총회 연설서도 21번씩이나 '자유'를 읊었다. 마치 자유 세례식이라도 하듯. 우리 국민과 세계 시민에게 자유의 가치의 재인식을 주문했으나 자유가 촉진할 번영과 평화, 양극화 해소, 기술혁신의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진 못했다. 하긴 자유가 내포한 광막한 행간을 굳이 현학적 수사(修辭)로 채울 이유는 없다. 그 여백이 차라리 리터러시와 상상력을 자극할지 모른다.
대통령이 외쳤던 자유가 파토스(pathos)면 어떠랴. 자유 전도사 윤 대통령 덕분에 시나브로 '자유'는 대한민국 국정철학의 대표 화두로 자리매김할 조짐이다. 어느새 민주·평등·정의·공정·소득·분배 따위의 상위 개념으로 정립되는 모양새다.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규제개혁이나 금산분리 완화도 경제적 자유의 발현 아닌가. 그런데 묘하다. 존 스튜어트 밀이 주창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정치의 자유는 외려 역주행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카툰 '윤석열차' 소동도 그 연장 선상이다. 정치적 편향을 문제 삼아 문체부가 경고를 하고 심사과정까지 들여다보며 윽박질렀다. 웃자고 한 풍자에 죽자고 달려드는 격이다. 대통령이 그토록 자유 세례를 퍼부었건만.
내부총질 혐의가 씌워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어찌 됐나. '6개월+1년' 당원권 정지란 중징계를 받지 않았나. 이준석 추가 징계에 대해 허은아 의원은 "보수의 자유가 무너졌다"며 탄식했다. 내부총질? 누구에겐 내부총질이지만 누구에겐 쓴소리다. 유신독재 시대의 언어 '일사불란(一絲不亂)'을 바라는가. 민주정당이라면 내부총질 할 자유도 있어야 한다. '양두구육'이 언제부터 금기어가 됐나. 소수 의견을 '이단' 취급하며 조리돌림 하는 풍조는 온당치 않다. 지록위마 무리수의 유치찬란한 '윤비어천가'는 자유의 소리가 아니다. 유승민 전 의원의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코미디 중단하라"는 일갈이 차라리 자유에 부합한다.
윤 대통령이 오지랖 넓게 자유를 강조했다지만 '주가조작의 자유'까지 포함했을 리 없고, 국민의힘 당명이 자유당으로 바뀌는 생뚱맞은 일도 일어나지 않을 터. 그러니 상식적인 자유가 옹위되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누릴 자유면 족하지 않겠는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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