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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원로원이 유능한 황제 옹립
로마제국의 전성기는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이른바 5현제(賢帝)가 다스리던 시기였다. 서기 96년에서 180년 사이다. 5현제의 마지막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남긴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현세에도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이다. 5현제 재위 때 '팍스 로마나' 시대가 열린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5현제는 모두 세습 황제가 아니었다. 원로원이 중심이 돼 당대에 가장 유능하고 덕망 있는 인물을 황제로 옹립했다.
#대처 흉내 냈던 트러스 전 총리
영국이 지난달 23일 450억파운드(약 70조원) 규모의 감세계획을 발표했다. 소득세 기본세율(20%→19%)과 고소득자에게 적용되는 최고세율(45%→40%)을 인하한다는 게 골자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고조되고 영란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 경제의 ABC를 뭉갠 해괴한 엇박자 정책이다. 재정 부담을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과 이에 따른 시중 유동성 증가를 예상하지 못했나.
최악의 뻘짓에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영국 채권가격이 급락했다. 국제신용평가사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들끓는 여론에 감세계획을 철회했지만 추락한 트러스 내각의 지지율은 요지부동. 트러스는 취임 44일 만에 퇴장하며 최단기 총리의 불명예를 떠안았다. 물빛 모르고 대처 흉내를 낸 트러스표(標) '폭망 경제정책'의 전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재앙
"노무현 정부의 이상은 원대했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다시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에 참석해 했던 말이다. 한데 문 정부 5년을 반추해 보면 아마추어 정부로 폄훼됐던 '노무현 정부 시즌2'다. 닮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부동산 정책은 그대로 빼다 박았다. 어설픈 수요억제책에만 매달린 것, 뒤늦게 공급대책을 마련한 것, 실패로 귀결된 것까지. 부동산값이 잡히지 않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안정은 정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국민이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에 대한 겁박이자 무능 고백서였다.
#대통령제 지지율 무관 임기 보장
지도자의 능력이 국가와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실증하는 사례들이다. '유능'은 번영의 젖과 꿀을 양산했고 '무능'은 경제파탄과 민폐로 귀결됐다. 한데 지도자의 무능에 대한 대응방식은 내각제와 대통령제가 판이하다. 내각제는 총리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물러나야 한다. 트러스도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44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일본은 총리 지지율이 30% 안팎이면 '위험 수역', 20% 안팎이면 '퇴진 수역'이다. 하지만 대통령제는 지지율이 꼬꾸라져도, 정책 실패가 잇따라도 임기가 보장된다. 대통령제의 맹점이다. 예컨대 무능했던 문재인 정부가 2년 단명으로 끝났다면 부동산 폭등이 없었을지 모른다.
무능의 죗값은 쓰다. 그 덤터기는 고스란히 국민이 덮어쓴다. 지금은 미증유의 복합경제위기 상황. 거기다 시민사회까지 찢어졌다. 한쪽은 '윤석열 퇴진'을 외치고 또 한쪽은 '문재인·이재명 구속'을 압박한다. 부위정경(扶危定傾·위기를 맞아 잘못을 바로잡고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움)이 국면 타개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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