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의 날, 그리고 임인년 구룡포수협 100주년 특별행사로 구룡포 아라광장 야외무대에서 구룡포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퍼포먼스 행사가 진행됐다. 이동순 시인이 아코디언 연주로 대미를 장식했다. 주민과 시인들은 서로 어울려 춤판을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
희망이 절망으로 몸을 뒤집는 삶의 한 대목이 있다. 그 절망은 희망보다 더 확장성이 높다. 그런 절망을 과연 경전과 교과서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건 어쩜 시인의 비명 같은 시집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일은 시의 날. 1908년, 한국의 첫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한국 최초의 잡지 '소년'을 통해 발표된 날이다. 소년 같은 전국 49명의 시인이 의기투합해 '구룡포를 사랑한 시인들' 명의로 멋진 시집을 출간했다. '어화만대(漁花滿代) 구룡포 시가 되다'. 그 시집의 주인공은 어쩜 시인들이 아닌지도 모른다. 7천200명의 주민을 가진 구룡포읍 그리고 해녀와 바다, 생선 유통의 최전선에 선 구룡포수협 관계자의 몫일 것이다. 그 중심에 이 행사를 진두지휘한 권선희 시인이 있다. 2000년 3월에 왔으니 이제 구룡포는 그녀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제2의 고향에서 받은 따뜻한 마음
시집 '구룡포…' 출간 기념 이벤트
주민이 선보인 풋풋한 詩劇·시노래
음악이 흐르자 모두 흥겨운 춤판
해녀 14명도 바다 일 접고 어울려
뒤풀이때 한상 차려진 대게·참문어
밤 새 잔 돌리며 읊은 시와 이야기
검푸른 밤바다 보며 詩想 굴리기도
![]() |
행사 뒤 전국에서 모인 40여명의 시인과 주민들은 구룡포가 준비한 대게, 문어 등을 먹으며 여흥을 즐겼다. 김해자 시인이 자청해 자기 시를 읽어주고 있다. |
◆시가 된 구룡포
시집의 서문을 읽어봤다.
'구룡포는 온몸으로 시를 사는 사람들의 세상이었습니다. 판장 가득 은빛 청어가 꽃으로 피는 봄, 허파꽈리처럼 오종종 매달린 골목이 눈부신 아침을 받아내는 포구, 초가을 태풍을 배웅하면 이내 희디흰 눈발 치던 포구, 해녀와 배목수와 어부와 아이들, 그리고 검둥이와 누렁이 가리비처럼 오목한 포구에서 노래 바람 다녀가면 명주바람 분다는 이치를 믿고 따르는 순정한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살고 있습니다. 밤바다 수평선 가득 고깃불이 꽃으로 만발할 여기, 구룡포 시인들이 노래합니다. 어화만대, 자손만대 평안과 풍어, 풍요를 기원합니다. 비로소 구룡포는 시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구룡포수협이 생긴 지 100년이 되는 해. 지난달 8일 임인년 풍어제를 했고 다시 29일 포구 한쪽에 있는 아라광장 야외무대에서 시집 출간을 기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나는 오후 5시37분에 구룡포 수협이 아스라이 보이는 무대 근처에 도착했다. 구룡포읍의 반쪽은 먹구름, 다른 반쪽은 노을에 젖고 있었다. 음과 양, 하늘과 땅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세상의 선과 악이 그 시각, 모두 구룡포로 소풍을 온 것 같았다. 파도는 자신의 욕망을 출렁거리는 수위로 호흡을 조절하고 있었다.
뱃사람들의 천적은 어쩜 시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솔직히 시인이 부담스럽다. 그들은 자본을 몰고 다니지만 시인 앞에 서면 이상하게 이들한테 빚을 진 것 같다. 그래서일까, 구룡포 뱃사람들이 이 행사를 위한 도움만 전달하고 가능한 폼 잡지 않았다.
박두규, 문동만, 안현미, 이원규, 함순례, 김성규, 정우영, 한창훈이 자작시를 낭독했고 포항에 머물며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이행하고 있는 프랑스 화가인 장미셀 리비오도 초대를 받아 시를 낭독했다.
김일란, 권정무, 김정화, 신은자 등 주민들도 풋풋한 시극을 선보였다. 진우와 박경하는 시노래 그리고 이동순 시인이 아코디언 연주로 대미를 장식했다. 목포의 눈물 등 아련한 추억의 옛 가요가 흘러나오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시인과 주민들은 뒤엉켜 춤판을 쏟아냈다.
◆구룡포는 기용포
이날 아침부터 '행사가 가능하겠냐'는 의구심이 들게 할 정도로 억센 비가 내렸다. 하지만 행사가 시작될 무렵 비가 뚝 그쳤다. 다들 용왕님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이날 주민들이 걸어준 현수막 문구가 단연 화제집중이었다. 주민들은 구룡포를 '기용포'로 발음한단다. 그래서 이런 재밌는 문구가 탄생한다. '아이고 바뿐데 기용포 와조가 고맙니더, 올래만이시더 참말로 반갑데이~' 여기저기 걸린 그 현수막을 본 시인들이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시인들을 위한 행사였지만 실은 주민들의 잔치였다. 시인들은 다들 부러워했다. 한 포구를 위해 전국의 시인들이 시를 잉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건 전적으로 권선희 시인의 너른 품앗이 정신 때문에 가능했다. 수협에서 구룡포의 역사를 다시 정리하고 해녀인문학을 채록하는 정성을 위해 '그냥상'이란 희한한 상을 준다. 그녀는 그 상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14편의 구룡포 관련 시화집 제작비로 쾌척했다. 다들 감동했고 권 시인의 일을 신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정색한다. 이 행사는 '구룡포가 주인공'이라며 선을 긋는다.
구룡포에 최적인 시인을 선정하고 원고를 받고 책을 묶고 행사 당일 일을 도와줄 일손을 확보하는 것까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협과 주민이 음으로 양으로 이 행사를 도와주었다. 14명의 해녀도 수훈갑이다. 이날 바다 일을 접고 행사장으로 직행했다. 시인들의 뒤풀이를 위해 실컷 먹어도 남을 정도로 많은 대게, 참문어, 구룡포 막걸리 등을 구룡포의 이름으로 찬조했다.
행사가 끝난 뒤 시인들은 근처 횟집에서 1차 술판을 전쟁처럼 벌였다. 그리고 구룡포청소년수련원에 사령부를 구축한 뒤 밤을 지새우며 잔을 돌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리산에서 이곳까지 온 이원규 시인은 말총머리를 연신 출렁거리며 호감 섞인 미소와 웃음을 선보였다. 육두문자급 입담을 가진 김해자 시인은 혼자 자청해 유행가를 부르고 어깨춤까지 추는 대단한 신명을 뿜어냈다. 영천에서 농사를 짓는 이중기 시인은 시종 일장훈시 급 법문(?)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이 시인은 이번 시집에 '구룡포 사람들 호롱불 데모이야기'란 시를 실었다. 그 내막은 이러했다. 그해 2월 구룡포항 밤은 불빛 한 점 없이 깜깜했다. 어느 날 전기회사 사원 놈들이 전구 검사한다며 느닷없이 집집마다 쳐들어 와 험악해져서는 자기네 회사가 판매하는 전구 아니라고 계약 위반이라고 전구 몽땅 몰수하곤 추징금 2원까지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그 행세가 천한 상것들이라 구룡포 사람들은 대번 데모! 돌입했다. 965개 전등 죄다 전깃불 꺼버리고 뒤란에 처박아 놓은 호롱 찾아 호롱불 밝혔다.
전남 거문도에서 어부의 삶을 사는 한창훈 작가. 대단한 협기(俠氣)와 입담을 가진 그가 이 시인의 말머리에 제동을 걸었다. 그때마다 웃음이 용암처럼 분출했다.
몇몇은 술판에서 벗어나 검푸른 밤바다를 보며 시상을 굴리기도 했다. 숙소는 있었지만 방은 비어있었다. 다들 이 밤에는 잠이 무용지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시가 변방으로 쓸려가는 이 시대, 그래도 시 하나로 밤을 덥혀줄 도반이 있다는 사실을 다들 고마워했다.
![]() |
구룡포항 전경. |
◆동병상련 시인들
한창훈의 시에는 소주가 흘러넘친다.
'어장하다가 배고픕니다. 소주 마십니다. 외롭습니다. 소주 마십니다. 힘듭니다. 소주 마십니다. 일이 남았는데 잠 쏟아집니다. 소주 마십니다. 다칩니다. 소주로 씻어내고 소주 마십니다. 선장이 지랄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선장 저도 마십니다. 동료와 시비 붙습니다. 소주 마시면서 화해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싸우고 또 소주 마십니다. 파도가 높습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잘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안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항구로 돌아옵니다. 소주 마십니다.'
토속적 몸선을 가진 함순례 시인은 '신도여인숙'을 정말 구룡포 토박이 정서로 잘 녹여냈다.
'남들 다 내 같지 않제 걱실걱실한 뱃사람들 상대하기가 좀 에려운 기라 고만 둬뿔라 몇 번을 맘묵어도 쪼매 두고 보제 했던가 이날이라카이 지금사 일 놔뿔기도 궁시럽고마 사람들 월세방으로나 돌리뿐 기라 그라도 한 밤만 재와주소 며칠 굶었는데 밥 좀 주소, 하믄 맴이 아퍼가 재와주고 믹인 사람, 빛도 없는 밤에 다리닥쳐가 날마새마 홀랑 도망간 넘들 쌨다 우째다가 방세 줄라꼬 다시 온 넘은 한 분도 못 봐가 속이도 속아주고 함시로 사람이 독해지제 아 이것? 예전 꽁치잡이배 그물에 쓰던 기라 열쇠가 하 쪼매니께 안경집만한 여어 다 잡아매놓으이 십상 좋다 주무이 뿔룩해징께 아참 하고 놓고 가는 기라, 여는 낯 씻는 데고 저짝이 볼일 보는 데라 영화배우도 여그 많이들 왔제 요샌 시인이라는 작자들도 더러 찾아오더만, 근디 시인이 대체 뭐하는 사람잉가? 시악시는 알어?'
![]() |
구룡포와 인연이 있는 전국 49명의 시인이 구룡포를 위해 시집을 출간했다. |
다음날 함흥식당에서 복국으로 속을 푼 시인들은 근처 다방(읍에는 다방이 28개가 있다)에서 커피를 마시고 근처 방파제 등에서 망막한 눈빛을 바다에 던지곤 구룡포를 떠났다. 오후 5시30분, 한창훈은 구룡포 시외버스정류장에서 부산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부산에서 거문도 행 배를 타기 위해서다. 무성한 웃음과 이야기를 남겼던 숱한 화상들을 모두 보낸 권 시인. 한달간 준비했던 행사를 마감하는 그 홀가분하면서도 허전한 심정을 혼자 추스르기가 뭣했던지 의사들이 절대 먹지 말라던 술을 기울였다. 시인들은 저마다 고마움이 담긴 메시지를 구룡포를 향해 날렸다. 시인 사용법을 아는 이는 누군가. 꿀벌이 없으면 과일도 없듯 시인이 없으면 대책 없이 지루한 일상도 사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구룡포를 떠나며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늘이란 천적, 그 아래서 하릴없이 지구 전과 그 이후의 쓸쓸함이나 파종하는, 혹여 그 뿌리를 향해 제 목숨 내놓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검푸른 바다의 행간에 주름살이나 빨래처럼 늘어보자는. 여기는 구룡포 세기말 주막 그리고 그 방파제 등대의 늑골 속 파고드는 한물간 빗소리, 그걸 유행가처럼 흥얼거리면서 평생 그렇게 시인들이 산책처럼 살다 갔으면 좋겠다.
구룡포는 내년에도 변함없이 시가 될 수 있을까?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