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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한국형 능상능하'의 실패
5년마다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차기 지도부 인선이다. 어김없이 칠상팔하(七上八下)의 불문율이 적용됐다. 68세 이상은 정치국 상무위원이나 정치국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는 의미다. 장쩌민 집권 때 만들어졌으나 지난달 열린 20차 당 대회에선 이 원칙이 깨졌다. 대신 내세운 잣대가 능상능하(能上能下)다. 나이에 관계 없이 능력만 있으면 가능하단 뜻이다. 한데 능력은 정량평가가 어렵다. 시진핑 3기 중국 최고 지도부는 시 주석 친위부대로 채워졌다. '시진핑 라인'이면 누구든 능력자로 둔갑한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은 다양성을 훼손했다. 19명 중 16명이 남성, 10명이 서울대 출신이고 호남 출신은 1명뿐이었다. 미국의 바이든 1기 내각은 여성이 46%이며 인종별로는 백인 50%, 흑인 23%, 라틴계 15%, 아시아계 11%다. 윤 정부는 다양성보단 능력주의를 표방했다. 이를테면 '한국형 능상능하'다. 그런데 겪어보니 능력도 꽝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판사 출신의 이 장관은 '행정'과 '안전' 업무 경험이 전무하다. 부적격자가 행안부 장관 자리를 꿰찼으니 재난안전 시스템인들 온전히 작동할 리 없다. 거기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는 면피성 발언까지. 공감능력도 빵점이다.
#현실인식 동떨어진 난독증
정부는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도록 권고했다. 희생자란 표현이 그리 못마땅했나. 중대본은 사망자가 중립적 용어라고 해명했다. 중립적 용어? 생뚱맞은 구실이다. 156명이 생명을 잃은 대형 참사를 사고라고? 현실인식과 동떨어진 난독증이다. 행안부 간부의 비굴한 부연(敷衍)이 더 처연했다. 이태원이 관광지여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그랬다나. 인사혁신처가 공무원 패용 리본에 근조 글씨를 못 쓰게 한 것 역시 블랙 코미디다.
남 탓과 막말 고질도 다시 도졌다. "이태원 참사는 문재인 정권에 책임이 있다. 세월호 후 안전 시스템 마련하지 않고 뭐 했나."(정미경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부모도 자식이 이태원 가는 것 못 막아놓고"(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 "구청이 할 일은 다했다"(박희영 용산구청장) "엄청난 기회다. 이렇게 큰 질량으로 희생해야지 세계가 우리를 돌아본다"(천공 스승) "웃기고 있네"(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국감 중 메모).
#윤 대통령의 오버
이태원 참사 후 윤석열 대통령은 여섯 차례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영국에서의 조문 불발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듯. SNS엔 천공 스승의 조언을 실천한다는 비아냥이 나돌았다. 조문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나 상식적이진 않다. 외려 그로테스크하다. 추모의 크기와 깊이는 조문 횟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희생자를 진정으로 추모한다면 막말한 자를 질책하고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을 해임하는 게 도리다.
국민 73%가 "이태원 참사는 정부 책임"이라는 여론이다. 외신은 "정부 관리 소홀이 빚은 인재"로 규정했다. 정부의 허술한 안전망과 경찰의 총체적 부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추궁 아닌 추모의 시간이라고? 역대급 궤변이다. 추모하면 추궁은 못 하나. 낱낱이 추궁해 진상을 규명하고 엄혹히 문책해야 한다. 그리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게 그나마 홀연히 스러진 청춘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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