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遷化의 꿈

  • 이춘호
  • |
  • 입력 2022-11-30 06:42  |  수정 2022-11-30 06:52  |  발행일 2022-11-30 제26면
답만을 존중하던 젊음이
길을 존중하는 늙음 될 때
죽음에 대한 지혜 갖춰야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사 안목을 성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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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낙엽은 동안거(冬安居)에 들어버렸고 노루 꼬리보다 짧은 초겨울의 햇살 속에는 냉기가 박혀 있었다. 주위에 앉은 시민들은 모두 반성문을 적고 있는 것 같았다. 시들대로 시든 늦가을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숙이고 '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그분은 삼매경을 한숨으로 지워버리고, 혼자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성결한 표정이었다. 커피 한 잔을 빼 들고 그 곁으로 다가섰다.

내 커피를 받은 그는 고맙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 지금 가장 절실한 게 뭐죠."

"절실한 건 없어요…. 산다는 게, 뭐, 좀 그래요?"

"그래요가 어떤 거예요?"

"그건…, 그냥 그런 거죠."

젊음은 늘 답을 찾지만 길에서는 항상 헤맨다. 하지만 늙음이란 길은 존중하지만 답이라는 게 수학의 답 말고는 삶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답을 위한 인생은 얼마나 섬뜩한 구석이 있는가. 길은 있지만 답이 없다는 말. 그건 다시 말해 인간은 타인의 행복을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라는 말과 상응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는 않다. 사회란 특수감옥에 갇혀 한세월 자기의 일을 완수해야 비로소 삶은 충분해진다. 그리고 삶의 필요충분한 세월을 보내면 비로소 찾아오는 자기와의 결별 수순이 기다린다. 바로 임종(臨終) 아닌가. 이승의 트라우마가 만들어 놓은 덫일까. 과연 순도 100% 임종은 어떤 걸까?

아무튼, 그 어르신은 "지난 시절에는 모든 게 문제인 것 같은데 지금은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자연은 늘 혼자다. 나무도 혼자이고 야수도 혼자이고 바람도 혼자다. 깊은 밤 위장은 혼자 음식물을 삭여낸다. 가로등도 늘 혼자다. 그런데 그 혼자라는 게 황홀하게 다 연결돼 있다. 임종과 포개질 시점이 온다면? 삶의 인식이란 게 도무지 말과 글로는 불감당일 것 같다. 저 어르신도 조만간 찾아올 죽음의 그림자, 저승사자와 어떤 수인사를 나눌 건가를 사색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탄생은 나의 통제범위에서 너무 아득히 멀어져 있는데 다행히 죽음 이 하나는 한 주체가 주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아닌가. 죽음의 과정이 멋진 라이브공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그 공연의 몫을 언젠가부터 의사와 약물한테 빼앗겨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향해 보낼 수 있는 능동적 개입의 기회도 이젠 거의 기대할 수가 없어진 것 같다. 완벽하게 타율적인 공간에서의 죽음. 이 찬란한 문명의 이기 속에 도사린 하나의 '악몽' 아닌가. 갑자기 '천화(遷化)'에 대한 부러움이 든다. 천화는 좌탈입망보다 한 수 위의 가공할만한 불교계 고승의 멋진 죽음의 방식이다. 끝이다 싶을 때, 곡기를 끊고 생을 지탱했던 온기를 스스로 죽음 모드로 바꿔놓는 것이다. 삶이 죽음을 가장 통쾌하게 맞이하는 방식 아닌가.

천화는 불가능하고, 대책 없이 살기만 좋다는, 이 우라질 세상의 이율배반적 편리함이 오늘따라 더없이 비애스럽게 다가선다.
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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