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황색 정치' vs '좁쌀 정치'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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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1 06:42  |  수정 2022-12-01 06:49  |  발행일 2022-12-01 제22면
개인 거짓말에 올라탄 야당
친한 사람 챙기는 윤 대통령
정치공학·미시적 현안 집착
여야의 '적대적 대치' 피로감
좀스러운 정치 누가 감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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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ㅇㅇㅇ이도 왔어?" "응, 첼로 반주로 '동백아가씨' 불렀어" "미친~". 한 달여 정치판을 달군 '청담동 술판' 해프닝은 한 여성 첼리스트가 꾸민 신파였다. 거짓이 들통난 뒤 공개된 남자친구의 멘트는 녹취록이 전부 허구라는 사실을 응축한다. "야, 이 뻥쟁아."

문제는 공당(公黨)이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거짓말에 올라탔다는 거다. 김의겸 의원은 통화 녹취록 폭로에만 급급했을 뿐 진위 확인엔 소홀했다. 정권의 1인자와 1호 실세가 새벽까지 술판을 벌였다? 그것도 김앤장 변호사들과 어울려. 민주당은 "제2의 국정농단"이라며 판을 키울 기세였다. 하지만 허접한 폭로는 자충수로 돌아왔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의혹 제기가 아니라 거짓말 중계"를 한 셈이다.

블랙 코미디 '청담동 술판' 사건은 좀스러워진 여의도 정치의 민낯을 투영한다. '황색 저널리즘'이란 말을 원용하면 소위 '황색 정치'다. 관음증을 자극하는 '황색 정치'는 대개 황당한 결말로 귀결된다. '빈곤 포르노' 공방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포르노' 대목에만 매몰했고, 김건희 여사는 14살이나 된 아이를 안고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를 했다. 오버한 거다. 하지만 지엽적 사안에 집착한 장경태 의원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조명 설치 여부가 뭔 대수인가. 윤희숙 전 의원이 제대로 짚었다. "우리 정치판이 온통 '선데이 서울' 같은 느낌"이라고. '선데이 서울'은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성인용 주간 잡지다.

민주당이 '황색 정치'로 헛발질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좁쌀 정치'로 점수를 까먹었다. 슬리퍼와 팔짱은 갈등의 본령이 아니다. 기자가 언성을 좀 높였다고 도어스테핑을 중단한다? 쪼잔하고 감정적 대응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김영삼 전 대통령 7주기를 맞아 국립현충원에서 YS 묘소를 참배하고 "거산의 큰 정치를 되새길 때"라는 방문록을 남겼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행보는 '큰 정치'보단 '협량 정치'에 가깝다. 지난달 25일 여당 지도부를 한남동 관저로 초대했고, 22일엔 '윤핵관' 4인방을 부부동반으로 불러 만찬을 가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나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은 기피하면서. "친한 사람 불러다가 밥 먹는 거 동네 계모임 회장도 그렇게는 안 한다."(박용진 민주당 의원) "윤 대통령이 이재명 인간 자체가 싫어 안 만난다고 들었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필벌(必罰)의 칼날도 내 편에겐 무디다. 여당 내에서 이상민 장관 경질론이 불거지자 윤 대통령은 "민주당과 같은 소리를 하느냐"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이 장관의 든든한 뒷배를 눈치챘던 걸까. 특별수사본부의 행안부 압수수색도 장관 집무실은 예외였다. 158명이 생명을 잃었는데 책임지는 고위층이 없다? 언어도단이다. 왜 공무원 노조원 83%가 이상민 장관 파면에 찬성했을까.

여야의 '적대적 대치'는 계속된다. 정치 시계는 사실상 멈춘 상태다. 예산안 처리는 정기국회가 끝나는 9일마저 넘길 공산이 크다. '거짓공갈당' '패륜 예산' 따위의 독기 서린 말싸움만 이어진다. 국민의 피로감도 쌓여간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선 국민의힘(64%)과 민주당(59%)의 비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권력구조 개편, 지방분권 개헌, 지역주의 완화 같은 '거시 정치' 논의는 실종됐다. 오직 선거를 겨냥한 정치공학에만 천착한다. 경제에 비유하자면 미시 현안에 집착해 정작 중요한 물가, 환율, 성장률 같은 거시 경제를 팽개치는 꼴이다. 상대를 흠집 내려는 '황색 정치', 관용 없는 '좁쌀 정치'론 표심(票心)을 얻지 못한다. 좀스러운 정치에 감응(感應)할 국민은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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