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청도 힐링 여행 .4] 청도읍 새마을로…지눌의 은행나무 지팡이는 천년 세월 巨木이 돼 절집을 지키고…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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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13 07:08  |  수정 2022-12-13 07:20  |  발행일 2022-12-13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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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로 길게 이어지는 원동길 끝자락에 원효대사가 664년 창건했다는 천년고찰 적천사가 있다. 적천사 입구에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한 그루는 수령 500여 년, 또 한 그루는 수령 800년에서 1천년으로 추정되며 사진 속 나무다. 지눌이 적천사를 중창했을 때 그가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청도읍을 중심으로 청도의 남쪽 밀양과 북쪽 경산을 잇는 길을 '새마을로'라 한다. 새마을로는 1970년대 우리나라의 가난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사회 개발운동인 '새마을운동'에서 따 온 이름이다. 1969년 8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경남의 수해복구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중 철로 변 마을 사람들이 제방을 보수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기차를 세웠다. 그리고 이 마을의 잘 단장된 지붕과 우마차가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닦여진 안길, 정비된 우물과 넓어진 농로를 보고는 '바로 이것이다'라며 무릎을 탁 쳤다. 이듬해 그는 '이 마을을 본보기로 우리나라의 모든 마을과 국토를 가꾸고 보존하자'라는 마을 가꾸기 사업을 제창했다. 이것이 새마을운동의 시작이다. 대통령이 기차를 세우고 무릎을 탁 쳤던 마을이 바로 청도읍 신도리(新道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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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은 새마을운동의 탄생배경과 발전단계, 우리나라 발전에 미친 영향과 성과, 그리고 새마을운동의 세계화 경향 등을 체험과 함께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새마을로는 경산에서 성현(省峴) 고개를 넘어 청도로 들어오는 화양읍 송금리에서 시작된다. 길은 경부선 철길과 나란히 달리다가 청도읍에 들어서면서 청도천과 합류해 남향한다. 청도역 다음 역은 신도리 신거역(新巨驛)이다. 청도읍 신도리와 신도리 동쪽 마을인 거연리의 앞글자를 딴 신거역은 신도마을 잘살기 운동 7차 사업으로 주민이 1967년 철도청에 건의하여 만들어진 간이역이었다. 대통령의 열차가 멈춰 선 바로 그 역이다.

1988년에 수요 감소로 역사가 철거되었고 현재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지금 신거역에는 역사가 복원되어 있다. 역사 앞 철길에는 대통령 전용 열차를 복제한 차량이 전시되어 있으며 역 광장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이 서 있다. 광장에서 번영의 길을 따라가면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이 나타난다. 새마을운동의 탄생배경과 발전단계, 우리나라 발전에 미친 영향과 성과 그리고 새마을운동의 세계화 경향 등을 체험과 함께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기념관 앞 협동마당에는 새마을 운동의 변천사가 간략하게 새겨져 있고 그 너머로 조르라니 늘어선 마을의 집들이 보인다.

신도리는 현재 마을 전체가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공원이자 테마파크다. 마을에는 새마을 식당이 있고 돌담에는 옛 사진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1989년에 영업을 중지했다는 신도정미소는 과거 박종태씨 소유로 현재는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야생화 단지와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있고, 초가집과 슬레이트 지붕 집·기와집 등을 볼 수 있는 시대촌 공간이 있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는 새마을 체험 학습장과 새마을 학교가 자리한다. 체험 학습장은 새마을운동의 캐치프레이즈인 '잘살아 보세'를 테마로 새마을 단위사업을 연출한 세트장이다. 새마을회관과 창고·지붕 개량·절미가정·부녀회 저축·안길 정비와 농로 확장·퇴비증산운동·공동작업장·전기사업 점화식 등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邑 중심으로 南 밀양~北 경산을 잇는 길
박정희가 기차 세우고 무릎 친 신거역
새마을운동 발상지기념관 돼 역사 복원
그 너머 마을 전체가 '새마을' 테마파크

새마을로서 원리로 빠지는 원동길 끝
일제강점기땐 독립운동가 집합소였던
원효 '창건' 지눌 '중창' 천년고찰 적천사



새마을 학교는 옛날 교실 모습을 재현한 곳으로 새마을운동을 테마로 하는 어린이 종합체험센터다. 수해 복구·편백나무 모래놀이장·물길 만들기·집짓기 체험·새마을농장·지붕개량 체험·마을 불 밝히기·분리수거 체험·희망 메시지 남기기·지구촌 새마을운동 등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과 놀이를 즐기며 새마을운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마을의 변화는 신도리가 고향인 김봉영씨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를 졸업한 그는 전쟁이 끝나고 황폐한 서울을 보며 농촌이 잘 살아야 도시가 번성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57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마을의 이인우·박종태씨와 의기투합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먼저 작고 쉬운 일부터 시작했다.

마을 구석구석에 방치된 쓰레기를 치우고 꽃길을 만들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도 청소했다. 마을이 깨끗해지자 지붕 고치기에 나섰다. 매년 수선해야만 했던 초가지붕 대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꿔나갔다. 그리고 농로를 개설하고 담장을 고치고 마을 안길을 확장하고 전기를 가설하는 등 차곡차곡 마을을 바꿔나갔다. 이후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전국의 수많은 새마을지도자와 공무원·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신도리를 찾았다. 이제는 새마을운동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경험하고 여가를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또한 매년 수많은 외국인이 새마을운동을 배우기 위해 신도리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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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경부선 철로를 활용해 조성한 청도레일바이크는 왕복 5㎞ 거리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 있어 찾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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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자전거 공원에는 산악자전거 체험코스와 지원센터 등이 마련돼 있다. 자전거를 직접 가져와 탈 수도 있고, 대여도 가능하다.

◆원동길과 하지길

신도리 북쪽은 화악산(華岳山) 골짜기의 원리(院里)다. 원리는 조선시대 의료기관인 제생원(濟生院)이 있었던 마을이라 원마을 또는 원동이라 불렸다. 그래서 새마을로에서 원리로 빠져나가는 길은 원동길이다. 동서로 길게 이어지는 원동길 끝자락에 천년고찰 적천사(碩川寺)가 있다. 664년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828년 심지왕사가 고쳐 세웠으며 도선의 스승인 혜철이 수행한 곳으로 이름나 있다. 고려 때는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적천사를 크게 중창했고 일제 강점기 때는 독립 운동가들의 집합 장소였다고 한다.

적천사 입구에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서 있다. 한 그루는 수나무로 수령 500여 년, 또 한 그루는 암나무로 수령 800년에서 1천년으로 추정된다. 곧고 반듯한 수형에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넓고 깊은 그늘을 드리워 이끼에 뒤덮인 줄기가 서늘히 검다. 지눌이 적천사를 중창했을 때 그가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 현재의 적천사 은행나무라고 전한다. 은행나무 앞에 1694년에 이를 기록한 비석 '축보조국사수식은행수게(築普照國師手植銀杏樹偈)'가 세워져 있다.

신도리 남쪽은 유호리다. 신도리를 지난 새마을로와 청도천은 유호리 앞에서 크게 굽이치는데 그 모서리에 청도 레일바이크와 자전거 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처음 경부선 철도는 유호리를 지나갔고 역도 있었다고 한다. 철도는 1943년 직선화되었고 옛 경부선 철로를 활용해 조성한 것이 청도레일바이크다. 왕복 5㎞의 레일바이크와 아치형 보도교인 은하수다리·테마 산책로·시조공원 등으로 조성돼 있다. 인접한 청도 자전거 공원에는 산악자전거 체험코스(MTB알파인코스)와 MTB스킬센터·MTB지원센터가 마련돼 있다. 자전거를 직접 가져와 탈 수도 있고, 대여도 가능하다. 18개의 데크가 설치된 캠핑장도 있어 가족 단위의 레저문화 공간으로도 인기다. 신거역 앞 새마을로에서 청도 레일바이크로 가는 길 입구가 있다. 길은 하지길, 거연리 최하단부의 마을인 하지(下枝)의 이름을 딴 길이다.

◆한재로

청도 레일바이크를 지난 새마을로가 다시 크게 굽이쳤다가 또 한 번 더 굽어지는 귀퉁이에서 한재로가 빠져나간다. 한재로는 청도읍 초현(初峴)리에서 상리(上里)를 거쳐 각남면 신당리에서 청려로로 이어지는 긴 고갯길이다. 한재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대현(大峴)이라고도 하는데 남쪽의 화악산과 북쪽의 남산 사이 동서 방향으로 발달한 좁고 깊은 골짜기다. 청도향토사학회에서는 골이 길고 오래된 길이라 정의한다. 원래 상리에서 초현리까지를 한재라 했는데 요즘은 이 골짜기 전체를 한재라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길의 이름도 한재로다.

한재로의 봄은 참으로 호사로운 벚꽃 분홍이다. 그즈음 골짜기 땅을 가득 메운 비닐하우스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비닐하우스는 죄다 미나리밭이다. 그 유명한 한재미나리가 바로 이곳에서 자란다. 한재미나리는 1년에 딱 한 번 수확한다. 2월에서 5월까지 밭마다 시기를 조정해 수확한다. 한재에서 미나리를 수확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은 초고속으로 퍼져나가고 이내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한재를 넘는 장관이 펼쳐진다. 2월 초에서 3월 중순쯤 미나리는 아삭하면서도 부드럽고, 3월 하순이 넘어가면 그 향이 짙다. 5월을 넘기면 미나리가 질겨져서 자체적으로 생산을 금지한다. 한재미나리는 1994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미나리 무농약 재배 품질 인증을 받았다. 지금 한재골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미나리 재배 단지다. 상리에는 한재로에서 빠져나가 적천사로 가는 임도가 있다. 길은 청도 읍내까지 이어져 새마을로에 닿는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청도군지, 한국지명유래집,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청도문화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공동기획:청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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