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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意中)'이란 뜻의 '윤심(尹心)'은 어느새 관용어로 뿌리내렸다. 언론에서의 사용 빈도만큼이나 윤심의 위력도 메가톤급이다. 반도체 설비자에 대한 세액공제 8%를 고집했던 기획재정부가 나흘 만에 15%로 상향 조정한 사례는 윤심의 파워를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세액공제율을 높이라는 대통령의 지엄한 분부에 누가 감히 딴죽을 걸까. 기재부의 정책적 판단을 윤 대통령이 일거에 허문 꼴이다. 15% 룰을 적용할 경우 내년에만 3조6천억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이미 세간엔 "모든 길은 윤심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이목은 온통 윤심에 쏠린다. 당 대표 출마자들의 '윤심팔이'도 점입가경이다. 김기현 후보는 "윤 대통령과 눈빛만 봐도 통하는 '싱크로'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싱크로율 100% 당을 만들어 헌납할 테니 윤심을 흠뻑 실어달라는 읍소나 진배없다. 지난 9일 출사표를 던진 안철수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실패하면 내 정치적 생명도 끝"이라며 윤 대통령과의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했다.
호사꾼들의 최대 관심사는 나경원 전 의원의 출마 여부다. 뜻을 접자니 당심 1위란 지지율이 눈에 밟히고 호기롭게 출마하자니 대통령실에서 눈을 부라린다. 나 전 의원이 제안한 대출금 탕감 따위의 저출산 대책은 설익은 정책임에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실의 대응은 지나치게 거칠다. "당신은 아니야"라는 암묵적 교지(敎旨)로 비친다. 지난 연말만 해도 "대통령 말씀을 들어봐야 한다"며 몸을 낮춘 나 전 의원이다. 대통령의 '윤허' 없는 출마를 강행할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민심>당심>윤심'이 정상적이다. 민심이 당심보다 커야 하고 당심이 윤심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100% 당원 투표로 전당대회 룰을 바꾼 국민의힘은 외려 '민심<당심<윤심'의 공식에 가깝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해임 여론이 높아도 윤심이 두호하는 한 그의 자리는 건재할 것이다. 음주 후 잠에 빠져 이태원 사고 긴급전화를 두 번씩이나 놓친 윤희근 경찰청장이 청문회에서 뻗대는 모습도 가관이었다. 159명의 청춘이 희생됐는데도 책임지는 고위층이 한 명도 없다? 이런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니.
윤심이 강력할수록 여당이 대통령 사당(私黨)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커진다. 또 당심 우위는 민심을 왜곡한다. 국민의힘 80만 책임당원의 지역별 분포는 영남권 40%, 수도권 37%다. 당원 구성이 인구에 비례하지 않는다. 연령층 분포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공무원·군인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 "당심이 곧 민심"이라는 국민의힘 지도부 주장을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다. '민심<당심<윤심' 구도가 고착화하면 '민주'와 '공화'는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
김기현 후보는 곧잘 '윤비어천가'를 부른 인물이다. 지난해 9월엔 '자유'만 줄기차게 되뇐 윤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극찬했고, "원인을 따지지도 않고 덮어씌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상민 장관을 두둔했다. 자진해서 복속을 다짐한 만큼 김기현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종속정당이 될 게 분명하다. 윤심이 바라는 그림이다. 안철수 의원은 출마 선언 때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당원들에게 바치겠다"고 했다. '총선 승리'를 무기로 당심을 잡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3·8 전당대회는 당심과 윤심이 겹쳐지는 '크기'에 따라 친윤 또는 범윤·비윤 후보의 당락이 엇갈릴 것이다. '민심·당심·윤심'의 역학구도도 주목해야 한다. 총선 승패를 좌우할 변수인 까닭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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