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죽음보다는 일상

  • 이춘호
  • |
  • 입력 2023-01-18 06:44  |  수정 2023-01-18 06:46  |  발행일 2023-01-18 제26면
종교 간 빈익빈 부익부 팽배
자연을 향한 인류의 탐욕
결국 지구온난화 초래
막연한 초월로 도피 말고
시민정신으로 일상 살펴야

2023011801000447700018121
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일상의 본질은 '변화무상', 계절은 '반복', 세월은 '중화'. 그러니 일상파는 돈, 계절파는 순리, 세월파는 초연함에 길든다. 문제는 세월파. 그들 상당수는 초월의 종족이다. 그 종족은 구도자와 성직자로 나눠진다. 성스러움의 원천은 바보스러움과 침묵. 역설적이게도 더 똑똑하고 웅변스러운 세속이 그를 섬기려 든다. 그러나 성스러움에도 폭압적인 구석이 있다. 모든 걸 신으로 회귀시켰던 중세의 성직. 지금 잣대로 본다면 '시대착오적 악령'이란 기분도 든다.

요즈음 스마트폰 때문에 갈수록 성직과 속인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종교의 평균적 권위는 추락, 동시에 극단파 종교는 더욱 분기탱천. 덩달아 종교를 버린 자연주의자도 증가 중이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그냥 자연의 순리대로 살다 죽겠다는 거다.

하지만 자연은 묵묵부답. 자연은 일상·계절·세월이 될 수 없다. 인간에게 '수(手)'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은 균형점을 알려주는 '저울', 모든 걸 비춰 주는 '거울' 같다. 인간이 한 짓을 그대로 되돌려준다. 선한 건 선하게 악한 건 악한 방식으로. '자연의 계시'일까? 그건 경고도 메시지도 교훈도 아니다. 그냥 인간의 자업자득일 뿐.

인간이 자초한 불행인데 종교는 자연이 조물주(신)란 방식으로 인간 세상을 '심판'한다고 풀이한다. 거기서 '지옥'이란 개념이 파생된다.

자연은 사실 전략·전술이 필요 없다. 빅뱅, 블랙홀, 중력, 전자기력 등 우주의 기본 에너지 시스템에 의해 만상(萬象)을 자동적으로 돌려준다. 소멸과 탄생이 기막히게 맞물려 돌아간다. 오직 '파괴적 균형'의 방식으로 우주를 유지한다. 절대 자유인 동시에 절대 평등이다. 모든 항성·행성·위성도 유한하다. 언젠가 파멸되겠지만 그 파멸의 자리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탄생한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란 명저를 통해 피력한 바 있다.

자연을 지배하는 건 자연의 순환뿐. 순환법칙은 과학자들이 거의 다 밝혀놓았다. 덕분인지 산업혁명 이후 3세기 동안 인류는 참 기고만장하게 살았다. 그 편리함이 되레 자연을 오작동 되게 만들고 사람들의 빈익빈 부익부가 이데올로기 전쟁을 가속화시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지구온난화, 그건 결국 인류가 인류를 향한 선전포고다. 자본의 독점·폭식성에 기인한 '환경파괴'란 핵전쟁이 먼저 터져버렸다.

자연도 매 순간 죽는다. 하지만 그 죽음은 즉시 '탄생'으로 이어진다. 인간도 매 순간 죽으면서 새로 태어난다. 완벽한 죽음이란 없는 건지도 모른다. 한 개체는 소멸할 뿐 계통은 자식이란 유전자를 통해 계속 살아있다.

계묘년 벽두,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잠시 내려놓자. 죽음보다 수천 배 더 풀기 어려운 일상의 온갖 문제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극빈, 테러, 중독, 왕따, 성폭행, 폭력, 마약중독, 연금 고갈…. 그건 기도로 해결되지 않는다. 투표로도 해결 안 된다. 혁명도 역부족. 해결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종교란 '충전소'에서 정신 차린 뒤 우리는 다시 일상이란 전장에 나서야 한다. 그게 정치와 시민 정신의 출발이다. 세상 너머 일상이 삶의 종착역 아닐까!
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