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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타이밍(timing)은 외국어이지만 우리말처럼 많이 쓴다. 국어처럼 사용하는 단어니까 정확히 말하면 타이밍은 외국어가 아니라 외래어다. 국어사전에는 타이밍을 적기(適期), 때, 기회로 순화하고 있지만, 타이밍이란 말에 녹아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오롯이 담아내진 못한다.
타이밍은 성공의 키워드다.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명운이 결단의 타이밍에 따라 엇갈린다. 인명 구조에만 골든타임이 있는 게 아니다. 부동산·주식 투자도 매수와 매도 시점이 성패를 가른다. 배구의 블로킹, 야구에서의 타격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다. '큐피드의 화살'도 적시(適時)에 날려야 사랑을 얻는다.
한때 '휴대폰 거인'이었던 노키아를 관통하는 화두도 타이밍이다. 노키아가 1996년에 내놓은 시제품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는 e메일과 검색 기능을 갖춘 휴대폰으로 스마트폰 원조 격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와이파이 같은 무선 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아 실용화할 수 없었다. 정작 2000년대 초반 애플과 삼성전자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대를 열 때 노키아는 꾸물거렸다. 한 번은 너무 앞서가 좌절했고 또 한 번은 트렌드에 뒤져 몰락했다. 2004년 세계 최초로 LED TV를 출시한 소니도 소비자의 기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게 실패 원인이다. 삼성전자는 달랐다. 소니 제품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시장의 변화추이를 정확하게 포착하며 타이밍을 맞췄다. LED TV는 금방 삼성의 히트상품 목록에 올랐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출마할 결심'도 타이밍이다. 나경원 전 의원은 좌고우면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김성태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의장이 홍심을 짚었다. "쓸데없이 시간을 많이 끌었다. 안 맞아도 될 걸 두들겨 맞았다." 대통령실의 거친 대응, 초선 의원 50명의 비판 성명은 나 전 의원 불출마를 종용한 압박이다. 적기에 출마를 결행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터다.
드넓은 '친윤 은하계'의 일원이 되길 바라며 자칭 친윤임을 호소했지만 그조차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압도적 당심 1위를 달릴 때 출마를 선언하며 친윤의 길을 가겠다고 약속했으면 어땠을까. 간만 보다 지지율 1위도 뺏기고 윤심(尹心)마저 멀어진 꼴이다. 괜히 '친윤 호소인' 이미지만 씌워졌다. 당내에선 '멀윤(멀리 있는 친윤)'이 아닌 '따윤(윤심으로부터 왕따 당한 비윤)'이란 말까지 나왔다. 당 대표 불출마의 결정적 이유다.
나 전 의원과는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타이밍의 달인으로 꼽힌다. 검찰총장 사퇴부터 정계 입문, 국민의힘 입당까지의 정치 여정은 잘 짜인 시나리오 같았다.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시점이 4·7 보궐선거를 한 달 앞둔 2021년 3월. 사퇴 효과를 극대화하고 여론을 응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6월29일 정치활동 시작을 공식화하며 노태우의 '6·29 선언'을 이입했다. 7월30일의 국민의힘 입당도 극적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당 밖에서 정치 내공을 더 다져야 한다고 조언했고, 일부 언론이 프랑스 마크롱 같은 제3의 길을 제시할 때였다. 국민의힘 입당을 지체했더라면 제1야당의 대선 후보를 꿰차지 못했을 개연성이 높다. 나 전 의원이 노키아의 궤적을 밟았다면 윤 대통령은 삼성의 길을 간 셈이다. '타이밍이 예술'이란 경구는 타이밍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함의를 내재한다. 기업의 성패 사례에서 보듯 너무 빨라도 지나치게 굼떠도 안 된다. 두 현자의 말에 답이 있는 듯하다. "반보(半步)만 앞서가라"(쭝칭허우 중국 와하하그룹 회장), "천천히 서둘러라"(아우구스투스 로마 초대 황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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