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공천이 뭐길래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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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2 06:49  |  수정 2023-02-02 06:54  |  발행일 2023-02-02 제22면
羅 비판 성명도 '공천의 힘'
초선들 '묻지 마 윤심' 현상
상향식 공천 뿌리 못 내려
트웨인 "역사의 흐름 반복"
내년 총선 평행이론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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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과거 정치부장 시절 가깝게 지낸 국회의원이 있었다. 취향이 필자와 판박이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술을 식도락으로 즐기는 스타일인 데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까지. 한 마디로 죽이 잘 맞았다.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첫째도 공천, 둘째도 공천, 셋째도 공천이다."

'공천=당선' 등식이 확고한 국민의힘 대구경북의 의원들에겐 공천이 정치 생명줄이나 진배없다. 50명의 초선 의원이 나경원 비판 성명에 참여한 소치도 '공천의 힘'이다. 대세는 '묻지 마 윤심' 아닌가. "집단린치이자 뺄셈정치"(윤상현 의원), "깡패도 아니고 참 철없다"(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 따위의 비난은 한쪽 귀로 흘려들으면 될 터.

총기 난사는 미국의 사회적 이슈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 정치판에도 이 말이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권 주자에게 총기를 난사했다"(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박 전 원장은 "공천 칼질당한 사람들이 모여 신당을 창당하고 그 당이 보수 1당이 될 것"이라며 보수 분열을 예언했다.

총기 난사? 그렇다면 내부 총질은? 따지고 보니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한 총기 난사도 내부 총질이다. 다만 총기를 휘두른 주체가 권력자냐 아니냐에 따라서 결말이 엇갈렸다. 비주류의 내부 총질은 당 밖으로 내쳐지거나 왕따 당하는 처지로 전락했고, 주류 세력의 내부 총질은 상대의 항복을 받아냈다.

보수 분열? 민주당 소속 노회한 정치인의 희망 사항일 수도 있겠으나 '공천'을 거론했다는 점이 꺼림칙하다. 보수 폭망의 경험칙도 공천 불협화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진박 감별사' '옥새 들고 나르샤' 소동으로 리더십이 붕괴됐던 2016년 총선의 예상 밖 패배, 대표와 공천관리위원회의 갈등이 폭발했던 2020년의 참패를 반추해본다. 국민의힘 내부 여건과 지도부의 행태가 평행이론에 부합한다면 내년 총선도 '진윤 감별사' 파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윤심 세력이 확장할수록 '친윤 호소인'이 늘어날 테고 '찐윤'을 찾아내는 '진윤 감별사'의 위력도 드세질 게 자명하다.

장제원 의원은 "개인의 욕망이 전체에 해가 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인용해 나경원 전 의원을 직격했다. 한데 당과 공천권을 장악하려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욕망은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 당선 가능성 1위 김기현 후보는 윤 대통령과 100% 싱크로당을 강조했다. 김 대표 체제는 곧 '윤석열 당'이란 의미다. 초선 의원들이 대거 친윤 대오(隊伍)에 합류한 이유다. '묻지 마 윤심' 현상은 역설적으로 시스템 공천, 상향식 공천이 착근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두 번씩이나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걸 기억한다. 그때 부당한 조치에 저항하지 않고 청와대와 당 지도부 눈치만 보던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의 무기력도 기억한다. 역시 공천이 원죄였다. 지금도 TK 의원에겐 정치적 역동성을 느끼기 어렵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일갈했다. "중앙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구경북 의원들을 물갈이해야 한다."

마크 트웨인은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흐름은 반복된다"고 말했다. 마치 평행이론에 주석(註釋)을 단 경구 같다. 내년 총선에선 평행이론이 작동할까. 공천권의 향배를 가늠할 전당대회의 귀결이 더 궁금해진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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