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연 있는 그림…화장당할 뻔한 명화…회장님은 왜 그런 유언 남겼나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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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3 07:43  |  수정 2023-02-03 07:45  |  발행일 2023-02-03 제14면
예술가 32인과 숨은 사연 해설
서양미술사·경향 살필 수 있어
언급 작품 소장 미술관 소개도

그림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가셰 박사의 초상' 첫 번째 버전. <상상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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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지음/ 상상출판/296쪽/1만7천500원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을 뜨기 6주 전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은 '가장 비싼 그림'으로 유명하다. 이 그림은 1990년 5월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천250만달러(약 900억원)에 낙찰되면서 큰 화제를 낳았다. 당시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그림을 손에 넣은 이는 일본 기업 '다이쇼와제지'(현 일본제지)의 사이토 료에이 명예회장이었다. 2006년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이 약 1천700억원에 팔릴 때까지 무려 16년 동안 '최고가 그림' 타이틀을 유지했다.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은 놀라운 가격뿐만 아니라 그림의 소유자가 남긴 유언 때문에 더 큰 화제가 됐다. 당시 75세였던 사이토 회장은 자신이 죽으면 이 그림도 화장해 달라고 유언했던 것. 하지만 1996년 사이토 회장 사후 이 그림의 행방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다시 팔렸을 거라는 소문만 있지 현재 이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가지고 있는지 행적이 불명확하다. 확실한 건 수십 년 후 이 그림이 다시 시장에 나온다면 '화장당할 뻔한 명화'라는 사연이 추가돼 또 한 번 최고가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이토 회장은 무엇 때문에 죽어서까지 이 그림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일까?

모든 미술 작품에도 저마다 사연이 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 초상화가 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는지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뭉크의 '절규' 역시 마찬가지다. 심란한 그림이 어떻게 뭉크의 대표작이 되었는지, 그가 무엇 때문에 이 그림을 그렸는지 잘 알지 못한다. 뒤샹의 '변기'도 어떻게 현대 미술의 신화가 되었는지, 니키 드 생팔은 왜 붓이 아닌 총을 들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는지, 미술작품 이면에 얽힌 숨겨진 사연은 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책은 지독한 가난과 사회적 차별, 끔찍한 성범죄, 심지어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나아갔던 32인의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 뒤에 숨겨진 사연을 소개한다. 저자는 미술가이면서 평론가로 활동하며 세계 각지의 미술관을 소개해온 '뮤지엄 스토리텔러'다.

저자는 책에서 고뇌하고 번뇌했지만 결국 결과를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반 고흐, 피카소, 앤디 워홀과 같이 잘 알려진 유명 화가들을 비롯해 '걷기'를 통해 조각을 만드는 리처드 롱, 꽃가루나 돌처럼 자연에서 얻은 유기적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볼프강 라이프 등 우리에게 낯선 현대 미술가도 책에 등장한다. 일화 중심의 어렵지 않은 언어로 쓰인 책을 통해 서양미술사와 현대 미술의 경향까지 살필 수 있다. 특히 화가의 생애뿐 아니라 명작의 가치와 부자들의 소유 욕망에서 비롯된 그림값과 관련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책에 실린 다수의 그림은 세계 도처의 미술관에서 저자가 직접 조우한 작품들이다. 책 속에 다룬 작가의 작품을 다수 소장한 미술관은 스페셜 페이지로 소개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예술 하면 밥 굶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성취를 이룬 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왜 예술을 선택했을까? 예술가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러한 질문을 품고 이 책을 써냈다"고 밝혔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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