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누가 '일사불란'을 원하나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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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9  |  수정 2023-02-09 06:48  |  발행일 2023-02-09 제22면
안철수 공격 羅 사태 데자뷔

논리 빈약·정치철학 부재

맹목적 추종은 간신배 루틴

이질적 조직 경쟁력 높아

대통령 협량 민심 공감할까

[박규완 칼럼] 누가 일사불란을 원하나
박규완 (논설위원)

안철수 의원을 향한 대통령실과 윤핵관의 공격은 나경원 사태의 데자뷔이자 데칼코마니다. 각본이 판박이인 데다 연출자와 주연, 조연이 동일 인물이다. 수법도 '빼박'았다. 융단폭격은 8일까지 이어졌다. "선을 넘었다"(장제원 의원), "대통령과 당 대표 후보는 동격 아니다"(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공산주의자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나"(이철규 의원), "안 의원이 당 대표 되면 윤 대통령 탈당할 것"(신평 변호사). 뜬금없는 탈당 시나리오에 유치찬란한 색깔론까지 등장했다.

한데 대통령실과 윤핵관의 파상공세는 논리가 빈약하고 정치철학이 없으며 전략적 부재를 노정한다. 대통령이 중립적 입장에서 당 대표 경선을 지켜보고 있다고? 그렇다면 폭압적으로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힌 건 누구 뜻이었나. "대통령이 당비를 월 300만원씩 내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대목에선 실소가 나온다. 당무 개입을 시인하는 고해성사 같아서다. '간신배'란 단어는 왜 못 쓰게 하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말마따나 '간신배'는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다. 제 발이 저리지 않고서야 특정 언어를 통제할 이유가 없다.

결정적 장면은 안 의원의 '윤-안 연대' 발언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격앙된 반응이다. 윤 대통령이 "도를 넘은 무례의 극치"라고 말했다는데 우선 이 문구는 비문(非文)이다. "도를 넘은 무례"라고 하든지 그냥 "무례의 극치"로 표현해야 한다. '극치'도 모자라 '도 넘었다'는 수식(修飾)까지 붙였으니. 대통령 심중(心中)에 이미 '안철수'란 이름이 지워졌다는 방증이다.

이준석 쫓아내고 유승민 왕따시키고 나경원 제거하더니 이젠 안철수까지 빼낼 요량이다. 전형적 뺄셈정치다. 대통령과 정체성이 부합하지 않으면 같이 갈 수 없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일사불란(一絲不亂)'을 원한다는 의미다. 안철수 의원은 이태원 참사 나흘 뒤인 지난해 11월2일 윤희근 경찰청장을 즉각 경질하고 이상민 장관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말 한 게 괘씸죄?

'일사불란'은 독재시대의 언어다. 민주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과거회귀형 언어다. 누구든 대통령의 견해에 토를 달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반대하는 참모들이 있기나 했나. 맹목적 추종은 간신배의 루틴 아닌가. 나경원 전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접으며 왜 "질서정연한 무기력보다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고 토로했을까.

춘추전국시대엔 유가(儒家·공자 맹자), 도가(道家·노자 장자), 묵가(墨家·묵자), 법가(法家·한비자), 병가(兵家·손자 오자) 등 수많은 학파가 서로 논쟁하며 학문과 사상이 부흥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이 검사 출신인 데다 소위 '성골 검사'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법가에 비유할 만하다. 하지만 법가만으론 정치 르네상스는 열리지 않는다.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판이 깔려야 한다. 다양한 정책과 의견이 분출되고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 쏟아져야 자유정부, 민주정당이다. 그러려면 통치자의 품이 넓어야 한다.

집권층의 '일사불란' 사조는 선거에도 독이다. 윤핵관이 일방적으로 옹립한 여당의 리더십에 끌릴 국민은 없다. 대통령의 협량(狹量)에 공감할 민심은 없다. 이질적이고 다채로운 구성원을 가진 조직일수록 경쟁력이 높은 법이다. 정부와 정당도 마찬가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철언이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불화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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