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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예술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분야에서도 '지역'은 큰 화두 중의 하나이다. 2013년 문화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는 국가와 지방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인구감소, 청년 세대의 유출 등은 지역 문화계에도 큰 문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영비법)에서는 2016년에서야 지역영화와 관련된 조항이 신설되었다. 지역 영화상영관 지원, 공공 상영 및 영상문화교육시설 구축 지원, 지역 주민이나 지역 영화 관련 단체의 사업과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근거로 중앙부처의 본격적인 지역영화 관련 사업은 2019년에 시작되었다.
영화진흥위, 관련 예산 지역당 1억원도 안 돼
'관람료의 3% 징수' 영화발전기금도 고갈 위기
코로나 인한 기금 부과 면제로 적자폭 더 커져
지역 영화 진출 위해 재원만큼이나 전략 중요
자유로운 창작 보장 '뉴욕 인디신 표방'도 대안
지역에서 서울로 이주한 영화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서울이나 수도권이 교육 환경이나 창작 환경이 훨씬 좋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2019년에 진행되었던 '지역 영화문화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역에서 활동 중인 영화인 86.5%가 영화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그나마 대구는 갖춰진 환경에 비해 창작자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작품성과도 좋은 지역 중의 하나이다. 대구영화학교(Daegu Film School)를 통해 지속적으로 영화 전문인력이 육성되고 있고, 대구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역영화 지원제도의 규모도 확대되어 가고 있다. 영화 후반작업시설 구축 등 관련 인프라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 남아서 활동하고자 하는 영화인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지역 간 영화 환경의 편차가 꽤 큰 편이고,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에는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영화정책을 총괄하는 영화진흥위원회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지역의 영화생태계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과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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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
하지만 지난 1월에 발표된 2023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사업 요강에 따르면 지역영화와 관련한 지원 정책은 많이 미비한 실정이다.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을 위해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으로 지역 자생적 영화 문화 활성화와 지역 영화·영상인력 육성 및 영화·영상산업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작 이 사업들에 배정된 예산은 15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사업예산을 전국 17개 광역시도로 고르게 배분한다 하더라도 지역당 1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지난해까지는 서울을 제외한 지역을 지원하는 구조였으나 이번에는 서울지역까지 대상으로 포함되면서 서울보다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지역은 아예 선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줄어드는 셈이 된 것이다.
영화와 관련한 정부의 예산은 영화발전기금으로 운용되는데, 기금은 관객이 영화관에서 구매하는 티켓값의 3%를 징수해 조성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전체 관객 수는 2억2천만명이었고, 대구지역 관객 수는 1천160만명으로 그중 5.2%를 차지하고 있다. 1인당 관람료가 1만원이라고 한다면 대구에서 거둬들인 영화발전기금은 약 35억원이 된다. 물론 이 기금이 전부 다 대구지역으로 배분되지는 않는다. 전체 영화산업을 위한 재원이므로 무조건 해당 지역으로 배분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역이 중요하고, 그것이 미래의 한국영화 전체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면 예산의 운용 방향이 바뀔 필요가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영화발전기금이 고갈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화관 수입 자체가 줄어들었고, 이마저도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영화발전기금 부과를 면제해주면서 적자폭은 더 커지게 된 것이다. 국고 등 다른 재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영화발전기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갈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영화발전기금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예산의 운용 방향을 수정하고, 지방정부는 중앙부처와 함께 지역 영화발전을 위한 재원 계획을 고민하고 동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릉의 유일한 예술영화전용관인 신영극장이 지자체의 보조금이 전액 삭감되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영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강릉씨네마떼끄는 영화관의 폐관을 막기 위해 후원 캠페인을 시작했지만, 시민들의 십시일반 도움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대구도 2020년 말, 예술영화전용관이었던 동성아트홀이 문을 닫음에 따라 지역의 예술영화 관객들은 갈 곳을 잃게 되었고 지역 문화계는 한발 퇴보하게 되었다. 2020년 초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어 올리자, 지방선거를 앞둔 뭇 후보자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지역의 영화발전을 부르짖던 풍경이 과연 실재했던 일인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지역영화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만의 발전전략 또한 필요하다. 지난해 열린 영화문화 포럼 '대구 영화생태계 비전을 말하다'에서 고현석 감독이 언급했듯, 대구는 창작자의 역량이 높은 만큼 산업적으로 고도화된 할리우드를 꿈꾸기보다는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한 뉴욕 인디신(Indie Scene)을 표방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일 수 있다. 존 카사베츠, 짐 자무쉬, 스파이크 리 등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영화들로 영화라는 세계를 새롭게 확장해 온 이들이 바로 뉴욕 인디신의 영화인들이었다. 이는 막대한 재원을 들이지 않고도 대구 정도의 도시에서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전략일 수 있다. 언제나 영화교육을 받을 수 있고, 누구나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하도록 영화인들을 육성하고 지원한다면 대구 영화계는 분명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낼 것이다. 다만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앙부처와 지방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올해는 그러한 전략을 수립하고 현실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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