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사천시 명소…情과 恨 '슬픔의 연금술사' 박재삼의 詩가 꽃핀 땅

  • 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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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4  |  수정 2023-02-24 09:03  |  발행일 2023-02-24 제38면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사천시 명소…情과 恨 슬픔의 연금술사 박재삼의 詩가 꽃핀 땅
사천 바다 케이블카와 다도해 풍경.

'하늘로 바다로, 사천으로'는 사천시가 헹가래 치는 홍보문이다. 거센 파도를 헤쳐가는 열정,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도전, 사천의 항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간다. 대륙과 해양의 기후가 섞여 연중 온난한 해상권 날씨. 육·해·공 교통의 요충지. 청정바다의 싱싱한 수산물, 한려수도의 비경과 유람선 관광, 국내 최대 백천사 약사와불, 다솔사와 고려 석굴 등의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이 풍부한 사천. 덧붙여 한국의 미래 50년을 책임질 꿈의 신 성장 동력 산업인 우주항공산업과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심지로서 천혜의 자연경관을 활용한 굴뚝 없는 고부가 산업인 사천 바다케이블카를 설치하여 관광산업을 중점 육성, 한국의 시애틀과 시드니로 만든다는 발전 로드맵을 설정하였다. 말하자면 사천은 우주항공산업과 해양관광 중심도시 사천 건설을 만들어 가는 희망이 활공하는 도시다. 사천 역사의 최초 기록은 삼한시대 변진 12국에서 볼 수 있다. 그때는 '사물'이었는데, 사방에 물이 풍부하다는 뜻이었다. 이후 신라 시대에는 '사수현'으로, 고려 시대에는 '사주'로, 조선 시대에 와서 '사천'으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1956년사천군에서 '삼천포'가 분리되었다가, 39년 만인 1995년 다시 사천시로 통합되었다. 근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삼천포다. 오늘 가는 답사지가 삼천포이므로.

삼천포항·노산공원 '박재삼' 시심 닦던 곳
사천바다 케이블카에서 본 오션뷰 감탄
각산 정상엔 고려때 통신수단 '봉수대'
와룡산 높고 낮은 99개 봉우리도 장관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사천시 명소…情과 恨 슬픔의 연금술사 박재삼의 詩가 꽃핀 땅
삼천포의 박재삼 문학관.

삼천포는 불교에 나오는 '삼천세계'에서 따온 지명이라 한다. 삼천세계는 이 허공중에 태양계와 같이 많은 행성을 거느린 세계가 마치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해석으론 다중 은하, 초우주로 볼 수 있다. 우주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며, 무두무미(無頭無尾), 불생불멸(不生不滅), 부증불감(不增不減), 불구부정(不垢不淨)이다.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고, 머리도 꼬리도 없고, 태어남도 멸함도 없고, 늘어남도 줄어듦도 없고,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심오한 지명인 삼천포를 없애는 것을 애석하게 여긴 시민이 2003년에 개통한 '창선 삼천포 대교'에다가 삼천포를 넣었다. 그리고 옛 삼천포는 삼천포항이란 이름으로 쓰고 있다. 아직도 시가지 몇 군데는 삼천포 명칭이 남아 있어 아련한 추억을 느끼게 한다.

먼저 바다가 낳은 시인, 삼천포가 낳은 시인으로 호명하는 박재삼, 노산공원에 있는 박재삼 문학관으로 간다. 박재삼은 1933년 4월10일 일본 동경에서 출생하여 3세 때,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삼천포로 이주해 자랐다. 아버지는 지게 날품팔이꾼이었고, 어머니는 생선 행상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렸다. 1946년 수남초등 졸업 후 가난으로 진학하지 못하고 신문 배달을 하던 중에 삼천포여자중 사환으로 취직하였다. 이듬해 1947년 삼천포 병설 야간 중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사환, 밤에는 학교 수업을 들었다. 그는 중학교 때 은사(恩師) 김상옥 시조 시인을 만나 문학 수업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1953년 '문예'에 시조 '강물에서'가, 1955년 '현대문학'에 시조 '섭리', 시(詩) '정적'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그 후 박재삼은 시(詩), 즉 문학의 길에 평생을 바쳤다. 삼천포항 거리와 노산공원은 그가 자주 거닐면서 꽃상여 같은 시심(詩心)을 닦던 곳이었다. 그의 시속에 나오는 햇빛, 바다, 나무 등의 소재를 볼 수 있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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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널공원의 풍차 건물.

그의 시(詩) '밤바다에서'를 보면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質定(질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 비늘을 닮아야 하리. 天下(천하)에 많은 할 말이, 天上(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 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의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1950년대 한국문학은 6·25 전쟁의 폐허 위에 시어(詩語)를 잃어버리고 방황한다. 입이 시(詩)보다 먼저이던 이 시대가 저물 무렵, 한국 시단은 박재삼의 토속적 미학과 음률로 익혀낸 시어(詩語)와 만나게 된다. 즉 정(情)과 한(恨), 기쁨과 슬픔을 토속적 박자로 되살려 만고절창의 서정시를 굽어내는 그의 기막힌 솜씨는 가히 경탄할 만했다. 그의 시세계(詩世界)는 타령조 가락과 민속적 서정, 헐벗은 가난의 고단함이 실려 있으며, 비극적 사랑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이를테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과 삼천포 바다의 비린내 묻어나는 정(情)과 한(恨)을 그는 서민적인 리듬과 가락으로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따라서 그를 '슬픔의 연금술사'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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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항 용궁수산시장의 정경.

삶 속의 비애를 노래한 그를 뒤로하고 '삼천포 아가씨' 동상을 본다. 이전에 삼천포 시장이 외국의 '인어 아가씨' 동상을 보고 우리도 만들자고 하여 시민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인어보다 아예 '삼천포 아가씨'를 만들자는 여론이 압도하였다. 이미 1960년대에 은방울 자매가 부른 '삼천포 아가씨'라는 노래가 널리 유행하였으므로. 삼천포 사람들이 노래방 가면 반드시 부르는 노래이며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불러 보았을 그 삼천포 아가씨의 가사는 이러하다. '비 내리는 삼천포의 부산 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 놓고 떠나시는 님이시여. 이제 가면 오실 날짜 일 년이요 이년이요. 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삼천포 고향으로.' 이 노래에도 박재삼의 슬픔과 한이 서려 있는 것 같아 입술이 바싹 탄다.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사천시 명소…情과 恨 슬픔의 연금술사 박재삼의 詩가 꽃핀 땅
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오십 년 연륜의 삼천포 대표 어시장 용궁수산시장을 거쳐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 사천 바다 케이블카에 도착한다. 대방정류장에서 승차한다. 바다 위로 해서 섬인 초양정류장으로 간다. 우리 앞에는 뒤에 두고 온 것들보다 나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초양정류장에서 일단 하차한다. 사천 아라마루 아쿠아리움, 동물원, 배 전망대, 장미공원을 둘러본다. 선사 유적지가 있는 늑도가 지척이다. 재탑승하여 각산정류장으로 올라간다. 아래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꺼풀에 경련이 인다. 바다의 물살을 보면서 각산정류장에 도착한다. 백제 제30대 무왕 6년(AD 605년)에 축성하였다는 각산 8분 능선에 있는 길이 242m의 각산산성을 둘러본다. 이후 각산 전망대에 오른다. 사천 바다와 더 먼바다, 그 황홀한 다도해 경치에 혼비백산한다. 동에서 남, 서쪽으로 눈을 굴린다. 통영 미륵산, 삼천포 화력발전소, 사량도, 연화도, 욕지도, 수우도, 추도, 두미도, 씨앗섬, 신수도, 장구섬에서 눈이 왕방울만큼 커진다. 이 파노라마 뷰에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이어서 구주산, 남해대교, 저도, 진도, 금오산, 비토도, 지리산, 사천대교, 솔섬, 금산 바로 앞바다에는 학섬, 모개도, 초양도, 창선도, 늑도, 신섬, 두용도, 박도, 마도 그리고 정신없이 앉아 있는 원근의 무인도들. 다도해는 슬프다. 아름답다. 환한 꽃밭 같다. 중천의 햇빛에 부화하는 흰 나비같이, 해무가 어리는 저 눈부신 바다. 그 하얀 햇살, 세상의 색이란 색을 모두 품은 흰빛처럼 혼(魂)마저 어지러운 하얀 바다. 그 설레는 변신. 그 한려수도의 비경을 품고 각산 정상 봉화대로 간다. 걸으면서 왠지 '무인도' 즉 고독감과 비장함을 멋지게 표현한 정훈희의 노래가 환청으로 들린다. 슬프면서도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는 '무인도'는 저 다도해를 노래한 것인지 모른다. 각산 정상 해발 408m에 있는 봉수대는 고려 때 것으로 창선도 대방산 봉수대 신호를 받아서 안정산 봉수대와 우산 봉수대로 연결했다. 북으로는 와룡산의 높고 낮은 99봉우리가 질주해 장관이다. 여기를 한때 왜 삼천포로 불렀는지 알 것 같다. 삼천포는 과거 현재 미래에 있을 그 모든 것이다. 마치 저 우주처럼.

글=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백계분 여행사진 작가


☞문의: 박재삼 문학관(055)832-4953
☞내비주소: 사천시 박재삼길 27
☞트레킹 코스: 노산공원-박재삼 문학관-삼천포 용궁수산시장-사천 바다케이블카 대방정류장-초양정류장-각산정류장-각산산성-전망대-각산 봉화대
☞인근의 볼거리: 사천 조명 군총, 무지갯빛 해안도로, 항공우주박물관, 사천읍성, 대방진굴항, 와룡산, 청널공원, 팔포음식특화거리, 남일대 해수욕장, 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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