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울진 월송정...화랑 보듬고, 파랑 맞서고…경외감 주는 검푸른 송림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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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4  |  수정 2023-02-24 08:09  |  발행일 2023-02-24 제16면
[주말&여행] 경북 울진 월송정...화랑 보듬고, 파랑 맞서고…경외감 주는 검푸른 송림
남대천과 동해가 만나는 곳, 모래의 가장자리를 따라 검은 띠와 같은 송림이 펼쳐져 있다. 모래의 움직임을 붙잡고 해풍에 정면으로 맞서 선 수천수만 그루 소나무의 숲이다.
백암산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모든 계곡물이 모여 남대천을 이룬다. 천은 동해가 가까워질수록 넓은 하곡을 만들고 그 사이를 비옥한 평야로 가득 채운다. 더욱 가벼운 모래알들은 해안의 사빈이 되고, 파랑에 밀려 사구로 자란다. 천과 바다가 만나고 부딪치고 깨지는 동안 모래는 어리둥절한 채로 연마되고 성장하고 때로는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 모래는 깊다. 그 깊은 모래의 가장자리를 따라 검은 띠와 같은 송림이 펼쳐져 있다. 모래의 움직임을 붙잡고 해풍에 정면으로 맞서 선 수천수만 그루 소나무들의 숲이다.

동해 닿은 평해 월송리 남대천 하구
수천수만 그루 솔숲이 길게 펼쳐져
신라 네 화랑 달 즐기며 놀다 간 곳

고려 충숙왕때 처음 지어진 월송정
조선 수군 주둔했던 월송포진 문루
일제때 숲과 함께 철거되고 베어져
주민·재일교포 나서 현재 모습 복원

[주말&여행] 경북 울진 월송정...화랑 보듬고, 파랑 맞서고…경외감 주는 검푸른 송림
[주말&여행] 경북 울진 월송정...화랑 보듬고, 파랑 맞서고…경외감 주는 검푸른 송림
월송정 송림 너머 서편, 굴미봉을 중심으로 송림 속에 평해황씨시조제단이 공원처럼 넓게 자리한다. 아름답게 가꾼 정원이 가문의 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월송리 월송정

쑤욱 빨려 들어가는 듯한 상쾌한 현기증과 함께 숲으로 든다. 이 숲에 대하여 '동국여지승람'은 '푸른 소나무가 만 그루이고 흰 모래는 눈과 같다. 소나무 사이에는 개미도 다니지 않으며, 새들도 깃들지 아니하다'라 전한다. 일종의 경외감을 주는 숲에의 인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숲에는 현재 다양한 수령의 금강소나무 1천여 그루가 단순림으로 자라고 있고, 해변의 해송을 포함해 3만8천여 그루의 소나무가 살고 있다. 그들은 서은의 무리처럼 묵연하고 물 흐르는 듯 서늘하다. 그들의 위무에 이끌려 깊은 숲에 다다르면 불쑥 솟아오른 언덕 위에 커다란 정자가 대장처럼 앉아 있다. 월송정이다.

월송정은 고려 충숙왕 13년인 1326년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처음 지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연산군 때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고,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낡아 무너지자 1933년 이 고을 사람들이 다시 지었다.

1349년에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쓴 '동유기(東遊記)'에 '일만 주 소나무 속의 정자를 월송(越松)이라 하고, 이 월송에 사선(四仙)이 놀고 지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옛 군지의 기록에는 신라의 영랑(令郞), 술랑(述郞), 남석(南石), 안상(安祥) 등 네 화랑이 솔밭에서 달을 즐겼다고 하여 월송(月松)이라고도 한다는데 이곡이 말한 사선이 바로 이들 화랑인 듯하다. 이 외에 중국 월국(越國)에서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고 해서 월송이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월국은 춘추전국시대 서시가 살았던 월나라를 이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숲의 시작은 기원전부터가 된다.

일제강점기 월송정은 일본군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 울창했던 소나무 숲도 모두 베어져 황폐해지고 말았다. 그 뒤 1956년 마을에 사는 손치후(孫穉厚)라는 사람이 나라의 도움을 받아 해송 1만5천그루를 다시 심었다. 터만 남아있던 월송정은 1969년 울진 출신의 재일교포 금강회(金剛會) 회원들이 다시 세웠는데 이후 198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현판은 월송정(越松亭),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의 친필을 새긴 것이다. 송림과 월송정이 자리한 이 마을은 울진 평해의 월송리(月松里)다.

월송정에는 수많은 편액이 걸려 있다. 조선 숙종과 정조의 시, 근재(謹齋) 안축(安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의 시 등 무수하다. 그 가운데 한산(韓山) 이산해(李山海)의 글에 마음이 머문다. '솔을 심은 이는 누구며 솔을 기른 이는 누구며 그리고 훗날 솔에 도끼를 댈 이는 누구일까. 아니면 솔이 도끼를 맞기 전에 이 일대의 모래언덕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져버릴 것인가.' 한산의 근심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늘, 솔숲 너머에 정자가 있다. 정자에 오르면 솔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바닷가 해변에 닿아 눈부신 모래밭을 연다. 그리고 그 너머에 해와 달이 떠오르는 수평의 바다가 있다. 월송은, 자꾸만 자꾸만 저 너머로 이끌고 가는 곳이다.

[주말&여행] 경북 울진 월송정...화랑 보듬고, 파랑 맞서고…경외감 주는 검푸른 송림
월송정. 고려 충숙왕 때 처음 지어진 월송정은 조선시대 월송포진의 문루였다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 현재의 월송정은 1980년에 복원된 것이다.
◆송림 너머

월송정 송림 너머 서편에는 들을 사이에 두고 굴미봉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송림이 빽빽하게 자리한다. 그 속에 평해황씨(平海黃氏) 시조인 황락(黃洛)을 기리는 제단이 공원처럼 넓게 자리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과 비석들은 조선 숙종 때 조성된 것이라 하는데, 넉넉하고 정성으로 가꾼 정원이 가문의 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독립운동가 황만영(黃萬英) 선생의 기념비를 볼 수 있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곳곳에서 의병이 봉기할 때 군자금을 대었고 학교를 지어 인재양성에 힘을 쏟았다. 국권을 빼앗긴 뒤에는 만주로 넘어가 이시영 등과 함께 신흥학교를 세우고 재정을 담당하는 등 1939년 64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항일 운동에 생을 바친 분이다.

굴미봉 송림 너머 남쪽에는 고등학교 건물을 사이에 두고 또 다른 송림이 무성하다. 월송리 달효(達孝)마을의 송림이다. 이곳에 조선시대 월송포진 성터라는 안내판이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연려실기술에 '월송포영(越松浦營)은 고을 동쪽 7리에 있는데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대동지지에는 '월송정(越松亭)은 월송진(越松鎭)에 있는데 푸른 솔이 만 그루나 있으며 모래가 10리나 깔렸다'고 적고 있다. 월송 포진은 1555년 명종 10년에 쌓은 석성으로 만호 1인과 수군 400명이 주둔한 병영 진지였다. 이곳의 수군은 동해안의 경비는 물론 삼척 포영과 함께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수색 토벌하는 수토사의 수군부대였다고 한다. 지금은 성터의 안내판마저 희미해지고 둔덕진 자리에 250년 된 팽나무만 성히 살아 있다.

월송정 송림의 남쪽, 남대천 하구와 맞닿은 송림의 배후에는 사구습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해안에서부터 차례로 3개의 해안 사구열이 잘 보존되어 있고 남대천과 바다를 잇는 하류 수역에 위치해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매를 비롯, 삵, 말똥가리, 새흘리기, 가시고기 등 다양한 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공원 중앙에는 전망대와 조류관찰대 등이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는 습지와 해안을 잇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느닷없지만, 월송정은 원래 월송포진 성의 문루였다. 월송정은 해방 후 신축할 때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 등 과거의 그림에서 월송정은 문루로 묘사되어 있다. 표암 강세황의 그림에서 월송정은 아주 조그맣다. 대신 우뚝한 산과 사구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이 보다 뚜렷하다. 이산해는 월송정 좌측의 모래언덕을 상수정(上水亭), 우측 모래언덕을 하수정(下水亭)이라 했다. 혹 월송정 송림이 상수정, 사구습지공원 일대가 하수정이 아닐까. 예부터 이곳 바다를 경파해(鯨波海)라 불렀다고 한다. '고래 같은 파도가 친다'는 뜻이다. 시간은 성의 운명을 바꾸고 고래 같은 파도는 모래언덕을 변화시킨다. 나무들은, 생이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 단단한 살은 자연스럽고 순정한 우미로 가득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20번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타고 포항IC로 나가 영덕, 울진 방향 7번 국도를 타고 간다. 남대천 건너 월송교차로에서 우회전, 월송사거리 회전교차로에서 11시 월송리 방향으로 나가 직진하다가 월송정 이정표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월송정 남쪽 송림의 배후에 습지공원과 월송포진 옛터가 위치한다. 영덕에 들어서서 후포 방향으로 나간 후 해안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남대천 하구, 습지공원, 월송포진 옛터를 거쳐 월송정에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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