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낙하산'을 위한 정권은 있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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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9  |  수정 2023-03-09 06:54  |  발행일 2023-03-09 제22면
KT 대표 외부인사 다 탈락

여당, 이사회에 폭압적 언사

정부 초기부터 낙하산 봇물

전문성·능력보다 캠프 우선

진부한 클리셰 이젠 끝내야

[박규완 칼럼] 낙하산을 위한 정권은 있다
박규완 논설위원

'검사 정권'의 닥공(닥치고 공격) 본능이 또 발동했나 보다. 이번엔 KT 이사회가 타깃이다. 사연인즉슨 KT 이사회가 33명의 차기 대표 후보 중 KT 전·현직 임원 4명을 심층 면접 대상자로 선정했다는 거다. 정치인이나 대선 캠프 출신 등 외부 인사는 전원 탈락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깃대를 들었다. '그들만의 리그' '이권 카르텔'이라며 KT 이사들을 몰아붙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KT는 국민의 기업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가 (CEO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데 KT CEO에 지원한 외부 인사는 대부분 IT 문외한이다. 유력 후보군에 꼽힌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중량감이 있을진 몰라도 다들 IT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6G·AI 시대를 견인할 KT 대표에 비전문가를 앉힌다? 정권의 아바타 아니면 안 된다? 윤 대통령이 말한 '국민 눈높이'가 비전문가나 아바타가 아니라면 'KT맨' 4명을 '숏 리스트'에 올린 이사회의 결정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여당 의원들은 치졸하고도 폭압적 언사를 퍼부었다. '낙하산'이 내려갈 자리를 원천 봉쇄한 게 괘씸했던 걸까.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며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 시키는 건 안 할 거다"고 장담했다. 꽤나 신선했다. 정치권에 빚진 게 없으니 약속을 지킬 수도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정권 초기부터 '낙하산 도미노 현상'이 펼쳐졌다. 문 정부에서 익히 봐왔던 익숙한 풍광이다.

대선 캠프 출신의 화려한 비상이 압권이다.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용기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 일일이 열거해서 뭐하랴. 문제는 하나같이 전문성이 없다는 거다. 한국철도공사 사장 출신 최연혜 사장은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탈락하고도 재공모를 거쳐 기어이 자리를 꿰찼다. '용산의 힘'이 작동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용기·함진규 사장도 국회의원 때 관련 상임위 활동을 한 것 말고는 전문성을 내세울 게 없다. 박주선 회장은 스스로 전문지식이 없다고 밝혔다. "겐세이" 발언으로 유명세를 탔던 이은재 전 의원은 캠프 출신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 지지 선언으로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직을 득템했다. 이 이사장 역시 건설이나 금융 쪽 이력이 없긴 마찬가지다.

관치(官治)의 서곡인가. 금융권도 낙하산이 대세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엔 관료 출신이 안착했다. 능력보다 낙하산? 재임 때 최대 실적을 견인한 손병환 전임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탈락은 낙하산의 병폐를 가감 없이 노정한다.

윤석열 정부는 문 정부의 나쁜 관행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권력기관을 동원해 공공기관장을 쫓아내는 진부한 클리셰도 여전하다. KT 차기 CEO 후보에서 자진 사퇴한 구현모 전 대표에 업무상 배임 혐의가 씌워진 배경이 그래서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은 지난 1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유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산하기관장에게 사퇴를 강요한 혐의다. 낙하산을 위한 정권의 참담한 귀결이다. 낙하산 잔혹사, 이제 끝낼 때도 되지 않았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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