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몰빵'의 몰락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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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3 06:53  |  수정 2023-03-23 06:55  |  발행일 2023-03-23 제22면
SVB 분산투자 안 해 파산
국힘 지도부·당직 친윤 일색
민주당은 '이재명 몰빵' 입길
팬덤정치 외연 확대 걸림돌
포트폴리오로 위험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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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SVB와 JMS는 뜬금없고 낯선 철자였다. 하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언론이 워낙 이 단어를 도배해서다. 미국의 16위 은행 SVB와 사이비 종교 JMS(기독교복음선교회)는 애당초 함께 엮을 수 없는 화두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긴 하다. 둘 다 이니셜이라는 거. SVB는 실리콘밸리은행의 머리글자이고 JMS는 교주 정명석의 이니셜이다. JMS는 패러디 소재가 되기도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사당화를 빗대 'JM'S 민주당'이라는 글을 SNS에 올리자 민주당이 발끈했다.

'몰빵'도 닮은꼴이다. JMS는 돈과 조직과 교리가 오직 정명석 1인에게 집중된다. 이를테면 권력의 몰빵이다. JMS 파산 원인은 투자의 몰빵이다. SVB는 고객이 맡긴 예금을 미국 국채나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증권 투자에 쏟아 부었다. 안정적으로 예대 마진을 챙길 수 있는 대출엔 소홀했다. 그러다 금리인상 폭탄을 맞았다. 미 Fed(연방준비제도)가 공격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서자 돈줄이 마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IT기업의 예금 인출이 이어졌고 SVB는 보유 국채를 헐값에 팔아야 했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국채값이 폭락한 까닭이다. 투자 손실은 뱅크런을 촉발했고 급기야 SVB는 폐쇄됐다. 분산 투자를 외면한 대가다.

우리 정치권에도 '몰빵'이 어른거린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선출직 최고위원을 싹쓸이한 데 이어 주요 당직도 독식했다. 공천의 실무 권한과 여론을 담당할 사무총장(이철규), 전략기획부총장(박성민), 조직부총장(배현진), 여의도연구원장(박수영)의 면면이 윤핵관이거나 초선 의원 연판장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이러고도 '연포탕(연대·포용·탕평)'? 아니 친윤 일색의 '용산탕'에 가깝다.

김기현 대표는 '당정일체'를 교조처럼 신봉하는 데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꺼이 90도 인사를 해댄다. 당정일체를 넘어 대통령 친위부대의 완성이다. 윤 대통령이 100% 그립을 쥘 수 있는 구도다. 이쯤 되면 내년 총선 공천의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검사 출신 50명으로 영남권 후보를 대거 물갈이한다는 소문이 낭설만은 아닐 것이다. 검사들이 입법부까지 장악하는 '검사 왕국'의 화룡점정이 현실화할지 궁금하다. 하지만 '친윤 몰빵'이 팬덤을 결집하는 효과는 있겠으나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대엔 독이다. 포트폴리오 원칙에도 위배된다. 리스크 관리의 함정은 어떡할 건가.

민주당은 '이재명 몰빵'이 입길에 오른다. 민주당이 처한 한계다. 120만명의 권리당원 중 '개딸'로 집약되는 팬덤은 30만명 남짓이다. '개딸'로만 총선 승리는 불가능하다. 중원으로의 세력 확장이 필수다. 하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병목현상을 유발한다.

대선 후보 지지율 1위 이재명의 '브랜드 가치' 또한 급락 위험을 내재한다. 브랜드 가치와 사법 리스크 간의 데드크로스가 발생하면 이 대표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당내에서 제기되는 '질서 있는 퇴진론'도 데드크로스에 대비한 포석이 아닐까 싶다. 적절한 시점에 이 대표가 사퇴하고 비대위 체제로 총선을 치른다? 나쁘지 않다. 다만 퇴진 시기가 관건이다.

강성 지지층의 비위만 맞추는 팬덤 정치는 극우와 극좌를 추동한다. 거대 양당의 푯대가 될 순 없다. 좌·우의 극지(極地)에 몰려 있는 광신자들은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낫다. 왜 밀란 쿤데라가 "광신자 집단이 범죄적 정치체제를 만든다"고 경고했을까. 공당(公黨)이라면 중원으로 우군의 영토를 넓혀야 한다. 바로 포트폴리오 정치다. 리스크를 분산하려면 '몰빵'은 금물이다. SVB의 몰락, 정치권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진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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