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이름이 뭐라고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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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3  |  수정 2023-04-13 06:52  |  발행일 2023-04-13 제22면
장미 체감향기 이름 따라 差

중국 다융시 개명 후 급성장

거대 양당의 문패 교체 현란

삼성·오성·삼광은 흔한 상호

'일광횟집' 친일 좌표 황당해

[박규완 칼럼] 이름이 뭐라고
박규완 (논설위원)

"이름이란 뭘까.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것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똑같이 달콤한 향기가 날 것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2막 1장에 나오는 대사다. 셰익스피어의 판단이 맞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장미에 곱지 않은 이름이 붙는 장미에서 느끼는 향기는 반감된다. 우리가 장미 향기를 맡을 때는 장미라는 이름에 함축된 의미도 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장미 대신 가시풀이란 이름을 붙인다면? 똑같은 향기를 발산하더라도 체감향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중국 후난성 다융시는 1994년 4월 장자제시로 도시 이름을 바꿨다. 다융시는 명칭 변경 전까진 변변한 도로 하나 없는 낙후된 도시였으나 개명 후 공항이 생기고 철도가 깔렸다. 성도 창사와 연결되는 고속도로까지 건설됐다. 관광수입이 늘어나며 장자제시의 재정이 탄탄해진 덕분이다. 이름 변경이 신의 한 수였다.

브랜드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도 있다. 2012년 한 일간지에 '우리나라에는 절대 들어올 수 없는 브랜드'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Boggi'는 현지 발음을 그대로 옮길 경우 여성 신체의 특정 부위를 지칭하는 원색적 용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3년 이 브랜드는 서울에 입성했다. 발음을 살짝 비틀어 '보기'라는 명칭을 사용했기에 별다른 파문은 없었다. '봇찌'와 '보기' 두 이름을 두고 고심했다고 한다. 나름 기지를 발휘한 셈이다.

우리나라 정당은 이름에 대한 집착이 유별나다. 거대 양당 다 개명 이력이 현란하다. 주로 정권교체기나 위기 때 문패를 바꿨는데 정체성 세탁과 이미지 변신을 위한 노림수였다. 국민의힘은 모태라 할 수 있는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에서 시작해 3공화국 민주공화당, 5공화국엔 민주정의당으로 바뀌었고 노태우 정부 때 3당 합당과 함께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그 뒤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차례로 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은 국민의힘보다 수명이 더 짧다. 한국민주당에서 민주국민당으로 개명했고 민주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으로 계속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어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다시 민주당으로 문패를 갈았고, 그 뒤 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미국은 다르다. 100년 넘게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 명칭에선 차라리 묵은 향기가 느껴진다. 진중함과 진득함이 묻어나서다.

경제계도 이름에 민감하다. 외환은행 먹튀 논란을 야기했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Lone Star)의 우리말은 일성(一星)이다. 이름을 빛내고 떨치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였을까. 우리 전통기업들은 별 성(星) 자나 빛 광(光) 자가 들어가는 명칭을 유난히 선호했다. 삼성상회, 오성기업, 일광상회, 삼광산업 같은 동명이사(同名異社)가 많다.

부산 일광횟집의 친일 시비는 황당하고 뜬금없다. 일광읍에서 영업하는 횟집의 '일광' 상호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이다. 외려 일광횟집에 대한 친일 좌표가 의뭉스럽다. 욱일기를 끌어들여 일광 상호에 친일 덧칠을 한다? 견강부회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광횟집 2차 만찬도 그리 책잡힐 일이 아니다. 횟집 앞의 조폭식 도열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건진법사의 소속 종단 일광조계종과 일광횟집을 한통속으로 엮는 것도 무리수로 비친다. 횟집 이름에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으랴. '일광'은 흔한 상호일 뿐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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