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뿌리, 문화 예술 중심지 달성 .3]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와 디아크…문화·사상 오간 강정 나루터서 '현대미술 반란' 시작되다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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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2 07:36  |  수정 2023-05-03 08:02  |  발행일 2023-05-02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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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위치한 디아크 문화관이 '2022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출품작 '바라보다(오동훈 作)' 뒤로 보인다.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시드가 디자인한 디아크는 강과 물, 자연을 모티브로 설계된 복합문화공간이다.

길지 않은 우리의 서양미술사 속에서 '현대미술'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광복과 분단, 좌우익의 이념 갈등, 6·25전쟁과 휴전 그리고 이후 이어진 혼란 속에서였다. 시대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작가들은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추상미술인 앵포르멜 경향의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작품을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심화시켜 나갔다. 젊은 세대의 방황하는 정신과 적나라한 삶을 거침없이 토해 낸 뜨거운 추상 미술운동은 1950년대 말을 거쳐 1960년대 전반을 휩쓸 정도로 화단에 강렬한 충격을 주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서막을 올렸다. 이후 청년작가들의 그룹 활동이 다양하게 형성되고 실험적인 퍼포먼스와 이벤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설치미술 등 다채로운 미술운동의 흐름이 연이어 나타나게 된다. 젊음으로 충만한 패기와 청년 정신으로 예술의 진정성을 찬양했던 그들은 항상 새로움을 갈구했고 실험을 즐겼으며 예술에 대한 열정은 무모하리만큼 전투적이었고 도전에 두려움이 없었다. 이처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현대미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이 바로 '대구현대미술제'였다.

1974년 서막 국내 첫 집단미술운동
새로운 현대미술 비전·방향 이끌어
유신체제 속 5회까지 열리고 막내려
2012년 '디아크' 개관…미술제 부활
올해 실내·야외 어우러지는 행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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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크 문화관 내부에는 평화와 화해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 '그리팅맨'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현대미술제

1974년, 달성의 강정(江亭)에서 전국 최초로 대구현대미술제가 열렸다. 강정은 나루터였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사람과 물류와 문화와 사상이 모이고 또 흩어지던 장소였다. 이러한 강정의 너른 백사장과 가창의 냉천 천변까지 전시장을 확장시킨 대구현대미술제는 기존 미술전람회의 양식에서 크게 벗어난 충격이었고 예술적 반란이었다. 김기동, 김영진, 김재윤, 김종호, 이강소, 이명미, 이묘춘, 이향미, 이현재,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 등이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의 기획자로 이름을 올렸고, 서울의 젊은 전위 미술가 그룹들과 개인 참가자 등 총 70여 명이 참여했다. 전시장 안팎으로 설치된 작품은 구상과 추상작품은 물론 입체와 설치, 이벤트와 해프닝, 영상매체를 이용한 설치미술까지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미술적 제작 태도를 다룬 개념미술의 새로운 양식도 함께 소개했다. 1회 대구현대미술제의 성공적인 개최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충분한 자극제가 되었다. 이는 지방 현대미술의 확산과 문화지형 변화에 큰 역할을 하면서 타 지방으로 확산되었는데 1975년 서울과 부산, 1976년 광주, 1977년 춘천과 청주, 1978년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현대미술제가 연이어 개최되었다.

대구현대미술제는 1979년까지 총 5회 진행되었다. 당시 유신체제라는 정치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반상업주의적이면서도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일종의 아방가르드적 예술투쟁을 추구했다. 1977년 3회 대구현대미술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196명의 작가가 참가하면서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졌다. 특히 강정 일대 낙동강 백사장에서 개념을 중심으로 한 전위예술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러한 행위예술은 대구현대미술제의 특징적인 행사로 주목받으면서 1978년에는 가창 냉천 계곡에서, 1979년에는 다시 강정에서 열렸다. 1978년 4회 미술제에서는 비디오, 필름 등 영상매체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언론은 "국내 최초로 비디오아트 전시가 개최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1979년 제5회 대구현대미술제는 한국 50명, 일본 작가 15명이 참여해 이후 대구와 일본 예술가들의 교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강정에서 시작된 대구현대미술제는 1979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국내외 정세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탄압이 시작되었고, 1980년대는 깊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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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크 문화관 지하 1층 강문화 전시실 내부 모습.

◆강정 대구현대미술제와 디아크 문화관

2012년, 강정에 디아크(The Arc) 문화관이 들어섰다. 디아크는 수면을 달리는 물수제비, 또는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 혹은 한국의 전통 도자기인 막사발을 닮았다. 동적이면서 정적이고,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이다. 강과 물, 자연을 모티브로 설계된 디아크는 강 문화의 모든 것을 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시드의 작품이다. 지하 1층에는 전시공간이 있고 1·2층에는 물을 테마로 한 거대한 서클영상 극장이 있으며 3층은 탁 트인 강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 데크로 구성되어 있다. 주변으로는 시민공원이 조성됐다. 1970년대 국내 최초의 집단미술운동이 벌어지고 한국 미술계의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시도됐던 바로 그 강정의 백사장이 모두에게 열린 공원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강정에서 제1회 '2012 강정 대구현대미술제'가 열렸다. 33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대구현대미술제의 부활이었다.

제1회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는 '강변랩소디'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 참여 작가인 이강소, 최병소, 이건용, 이명미, 김구림을 포함 총 14명이 참여했으며 설치미술과 야외 영상 프로젝션,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회화 등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이듬해 제2회 강정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제는 '강정 간다'였다. '강정 간다'는 달성 출신의 작가 장정일의 시 제목이다. 시에서 강정은 일상의 고단한 삶에서 벗어난 세계, 자유롭고 싶은 욕구로 만들어진 세계다. 장정일은 이 시를 통해 새로운 글쓰기와 해체적 실험을 선보였다. '강정 간다'는 새로운 작가들이 기존 미술계에 신선하고 청량한 바람,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게 하자는 바람과 연결돼 있다. 또 미술이 자연으로, 삶의 공간으로, 실세계로 들어가고,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이후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는 한 해도 빠짐없이 매해 개최되었다. 2014년 3회 '강정에서 물, 빛'과 2015년 4회 '강정,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에서는 강정이라는 장소의 역사성과 공간성을 재조명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다양한 시각이 펼쳐졌다. 2016년 5회 미술제의 주제였던 '5'는 강정 대구현대미술제가 5회째를 성공적으로 맞이했다는 의미와 함께 과거를 점검하여 앞으로의 비전을 발견하고 동시대 한국미술의 흐름 안에서 본 미술제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재확인하기 위한 주제였다. 6회째인 2017년 미술제는 건축과 협업이라는 파격적인 접근방식으로 치러졌다. 현대미술의 다양함이 야외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실현될 수 있는 접점을 모색하여 동시에 24인의 작업이 하나의 전시로 통일감 있게 전개돼 주목을 받았다. 2018년 7회 미술제의 주제는 '예술의 섬, 강정'이었다. 특정 비전이나 방향성을 정하지 않고 예술 그 자체만을 즐겨보자는 의미로 자유롭게 전개되었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2019년 8회 미술제는 '경계와 비경계-사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25명 작가의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참여 작가들은 현대미술의 개념을 보다 쉽게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예술적 소통에 무게중심을 두었으며 야외 공간이라는 특성을 살려 주변 환경과의 조화에 역점을 두었다. 특히 이 해에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는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로 바뀌게 된다. 명칭의 변경은 강정 일원에서 열리던 미술제를 달성군 곳곳으로 확장시킨다는 공고(公告)의 시발점으로 1970년대 실험정신을 이끌었던 '강정'의 정신은 이어가되, 지역적 한계는 열어놓겠다는 의미였다.

2020년에 열린 9회 미술제는 '조화를 통한 치유와 상생'이라는 주제로 코로나19 시대에 현대미술을 통해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상생의 메시지를 남겼다. 2021년은 달성대구현대미술제 10주년의 해였다. '예술을 품다, 달성을 품다'를 주제로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새롭게 조성된 달천예술창작공간의 입주 작가들의 작품과 전국 최초 문화예술중점 특수학교인 대구 예아람학교 학생들의 작품 등 소통과 공존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전시를 선보였다. 2022년 미술제는 '미술의 공진화(共進化)'라는 주제로 열렸다. 자연과 예술, 사람, 사물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미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상호 변화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 26명이 순수조형, 세라믹 등 다양한 분야의 설치작품을 선보였으며 달천예술창작공간 제2기 입주 작가들의 특별전시가 달천예술창작공간에서 열렸다.

올해 '2023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그동안 강정보 디아크 광장 일원에서 선보였던 야외 설치 작품 중심의 전시 구성에서 벗어나 디아크 1층에 실내 전시장을 조성함으로써 실내와 야외가 어우러지는 행사로 거듭날 예정이다. 또한 전시의 방향성과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국제적 인프라와 지역 고유의 문화를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감독을 선임하여 지역 현안에 국한되지 않는 전국 단위의 미술제로 발돋움하고자 한다. 국내에 서양화가 도입된 지 겨우 100여 년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한국 현대미술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대구현대미술제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현대미술 개념 확립을 위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면 오늘날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대중이 현대미술의 현장을 경험하고 미술이 대중과 소통하는 축제의 장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달성문화재단

▨참고= 대구의 뿌리 달성, 달성문화재단, 2014. 달성 대구현대미술제(http://www.dalseongart.com). 달성문화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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