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미터상 수상작] 추억은 그대로 공간은 새롭게…도시재생, 시간까지 담았다

  • 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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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16 07:46  |  수정 2023-06-16 08:47  |  발행일 2023-06-16 제35면
낡은 병원 '커피키친한일'로 재탄생
도심 속 자연 느낄 수 있는 '아르토'
입구·내부 반전있는 구조 '을갤러리'
원형 최대한 보존한 리모델링 추진
공간에 깃든 역사도 함께 보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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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키친한일은 본관 외부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진 ㄴ 형태를 하고 있다. 내부에는 1960년대 병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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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 아래에 단층으로 나지막하게 지어진 복합문화카페 아르토. 내부도 외부처럼 회색, 흰색, 검은색 등 무채색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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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갤러리는 외부가 좁아 보이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더 큰 공간이 나타난다.

프랑스 파리 북쪽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 몽마르트르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신선하다. 고층 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고 5층 안팎의 오래된 저층 건물들만 빽빽하다. 파리에는 100년이 넘은 건물도 부지기수다. 오래된 공간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담겨있다. 비슷하면서도 공간마다 특유의 분위기를 내는 이유는 분명 시간과 역사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반면 한국의 대도시는 파리와 사뭇 다르다. 급격한 개발로 오랜 역사를 지닌 공간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시재생'이란 미명 아래 낡고 오래된 공간은 높은 빌딩과 아파트의 숲에 떠밀려 자취를 감추게 됐다. 남은 공간마저 위태롭다. 그나마 최근 들어 '도시재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존재의 이유를 잃은 공간에 새로운 옷을 입히는 작업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오래된 공간의 가치가 재조명 받고 있는 셈이다. <사>여성과도시와 영남일보도 2020년부터 오래된 공간을 재활용해 공공적 가치를 구현한 건축물에 '미터(美터;m)상'을 주고 있다. 우리 건축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터상을 수상한 건축물 3곳(2022년도 최우수)을 직접 둘러봤다.

◆병원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커피키친한일'

붉은 벽돌, 흰색 기둥, 가로로 길쭉한 창문,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진 ㄴ 형태의 건물. 경북 경산 하양읍 동서리에 가면 좀처럼 보기 힘든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오래된 건물을 최대한 살려 다시 꾸민 공간이다.

나무와 덩굴, 풀이 가득한 마당을 가로지르면 본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 본관은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카페, 별관은 전시 등을 하는 문화공간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넓게 나 있는 큰 창문에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내부 곳곳에는 페인트가 칠이 벗겨진 채로 떨어져 있고, 오랜 얼룩이 그대로 남아있다. 건물을 둘러보면 이곳이 옛날에는 병원으로 사용됐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 건물은 건립 당시에도 매우 잘 지어진 고급 시설이었다. 큰 도시를 뒤져봐도 적산가옥이나 한옥이 아닌 이런 형태의 건물은 매우 드물다.

애초 이 건물은 1963년 성누가병원으로 지어졌다. 하양읍에 세워진 최초의 병원이었던 것이다. 성누가병원은 1980년대까지 하양의 중심 의료기관 역할을 해오다 개인 소유가 되면서 한일의원으로 명칭이 바뀐다. 한일의원은 2010년대까지 운영됐다. 이후 인쇄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몇 년 동안 빈 건물로 방치됐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쓰레기가 가득 쌓여만 갔다.

그러다 2021년 8월, 커피키친한일이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건축사 김기석(53)씨가 의도한 바다. 김씨는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대신 리모델링을 택했다. 뼈대를 보강해 건물 원형을 최대한 보존했다. 진료실로 사용됐던 본관은 카페, 입원실로 사용되던 별관은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영원히 사라질 수 있었던 건물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아 생명을 연장한 것이다. 공간에 깃든 역사도 함께 보존하게 됐다.

커피키친한일은 하양읍 중심부 큰 길가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대지면적은 843㎡, 건축면적은 383㎡로 규모도 꽤 큰 편이다. 주변에는 무학고와 하양여고,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경일대, 호산대 등 학교가 많다. 부담 없이 차 한 잔을 마시며 그림까지 볼 수 있는 일상과 미술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공간이다.

김기석씨는 "전시장에서는 회화 등 전시뿐만 아니라 각종 세미나와 대학교 졸업작품전, 소규모 공연도 열린다"며 "과거 병원이 지역을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커피키친한일도 지역 주민과 대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층 아파트 속 숨겨진 복합문화카페 '아르토'

대구 남구 봉덕동 우체국 뒤에는 최근에 지어진 20층짜리 아파트가 우뚝하다. 도롯가에 난 골목길로 들어서면 고층 아파트 바로 앞 60년이 다 되어가는 나지막한 단층 건물이 하나 나온다. 복합문화카페 아르토(Cafe ARTO)다.

아르토는 건축면적 269㎡ 정도의 아담한 공간이다. 도롯가에서는 보이지 않고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마당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색 현무암 자갈이 가득하다. 또 언제 심어졌는지 가늠이 어려운 큰 나무 두 그루가 넓은 그늘을 만들며 서 있다. 건물 내·외부는 무채색의 향연이다. 벽과 지붕부터 내부의 의자, 테이블, 벽난로 등이 주로 검은색과 갈색, 회색, 흰색으로 구성돼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대신 몬스테라와 같은 잎이 넓고 키가 큰 식물과 벽면 곳곳에 걸린 미술 작품을 배치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64년에 지어졌다. 원래 한 기업인이 사용하던 고급 주택이었는데 학원 등으로도 쓰였다. 이후 전시기획자인 손근수(53)씨가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뼈대만 남기고 완전히 뜯어고쳤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다시 살려보자는 뜻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콘크리트는 최대한 적게 쓰고, 대신 나무와 돌 등 자연적인 재료를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아르토는 도심에 있지만 자연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아르토는 크게 세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중간에는 카운터, 왼쪽은 옥상 테라스, 오른쪽은 실내 카페다. 실내 카페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이 있다. 작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독립서점 '책방일지'가 나온다. 숍 인 숍(Shop in shop) 개념으로 들어선 독립서점에는 일반 서점에서 볼 수 없는 책들을 팔고 있다.

아르토에서는 전시회가 꾸준히 열린다. 카페가 문을 연 지 1년 4개월가량 됐는데 모두 13번의 전시가 있었다. 거의 한 달에 한번꼴이다. 회화, 사진 등 주제도 다양하다. 주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고 있고, 작은 뮤지컬 공연도 열렸다. 손근수씨는 "일본 등 다른 나라에는 옛 건축물이 잘 보존돼 남아 있는 게 많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아르토의 경우에도 오래된 건물을 없애고 새로 짓기보다는 재생해 보자는 뜻으로 리모델링부터 인테리어까지 직접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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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갤러리 외부 모습.

◆공간 안의 또 다른 공간 '을갤러리'

대구 남구 이천동 고미술거리에는 특이한 갤러리가 하나 있다. 길가에서 보면 다른 건물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3층짜리 낡은 건물이다. 이 건물 1층 입구로 들어가면 첫 번째 전시장(43㎡)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시장에서 안쪽 문을 통해 들어가면 작은 마당이 나온다. 마당은 다시 더 큰 전시장(74㎡)이 있는 단층 건물로 이어진다. 전시장→마당→전시장으로 연결되는 형태다. 좁은 공간으로 들어간 뒤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 느낌이다.

마당에서 붉은색 철제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도 특이하다. 마당 한쪽에는 속새가 크고 있고 3m 높이의 붉은색 담장에도 덩굴이 자라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단층 전시장 건물 외벽의 색깔인 검은색은 담장 색깔인 붉은색과 어울려 뭔가 차분한 느낌을 준다. 창 구조도 범상찮다. 창문을 큰 정사각형 형태로 냈다. 옆으로 밀어서 열고 닫는 구조가 아니라 밖으로 밀어 창문을 여는 구조다. 그래서 을갤러리에서는 안에서 창문을 내다보면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시각적 느낌이 든다. 이 건물은 서향인데 큰 창문을 통해 3층에서 내려다보면 확 트인 전경이 정사각형 창문 속에 펼쳐진다.

이처럼 조금 독특한 공간을 기획한 사람은 김을수(60)씨다. 그는 2018년 낡은 건물 두 곳을 리모델링 한 뒤 '을갤러리'란 이름을 붙였다. 당시 3층짜리 건물은 고미술품 가게, 안쪽 1층 건물은 평범한 한옥이었다. 서로 다른 용도로 쓰이던 공간을 한데 묶어 새로운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김씨는 이 건물을 리모델링 하면서 원형을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시하고자 했다. 그는 "당시 이 건물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곳에 적어도 아파트가 들어올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건물이 낡았지만 예쁘고 좀 특이했고 갤러리에 들어온 사람이 예상하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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