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디자인과 색상…새빨간 품격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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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2 08:00  |  수정 2023-06-02 08:01  |  발행일 2023-06-02 제37면
중세시대 교황·고위층 빨강옷, 권력 상징
민주·부르주아 사회 변화며 권위성 약화
명품 브랜드 제시한 우아한 레드 드레스
20C 후반부터 젊고 세련된 아이템 色 변모

사진
발렌티노의 2008 오뜨꾸띄르 레드드레스
사진사진
프랑스 나폴레옹 1세 대관식 의상, 1806년

세상에는 수많은 색(color)이 있고 그 색들은 인간의 감정과 이미지를 담고 있다. 각 색들이 나타내는 이미지는 생활 속에서 많은 비언어적 표시로 사용되고 있고, 패션에서 살펴보면 대표적으로 장례식장의 검정 의상과 결혼식 신부의 흰색 드레스가 있다.

이 외에도 색은 뜨거움과 차가움, 위험 및 경고, 열정, 평화, 휴식 등 감각과 감성의 이미지를 담고 있어 정치적으로도 각 정당은 빨강과 파랑 등 상징색을 가지고 있고 정치인들은 정당 색의 넥타이나 스카프 등을 착용하기도 한다. 또한 많은 기업이 자신의 정체성의 의미를 담은 색을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한 기업 아이덴티티(CI·Corporate Identity)와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한 브랜드 아이덴티티(BI·Brand Identity)를 디자인하여 광고, 매장 디스플레이, 쇼핑백 등에 활용하고 소비자들이 그 색상을 보면 관련 기업이 연상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 색은 각기 내포하고 있는 이미지로 디자인에 활용되고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색이 빨강일 것이다. 사람이 색을 인식하는 데 빨강은 가장 먼저 인식이 되는 색상이며,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것처럼 빨강은 과학적 자연계에서도 우선권(?)을 가진다. 이뿐만 아니라 빨강은 수세기 동안 문화적으로도 힘, 권력, 충성, 공포, 활력, 여성, 사랑 등 스펙트럼의 양 끝에 위치한 극과 극의 이미지를 상징해 왔다. 아마 이는 빨강을 볼 수 있는 피와 불이 생명, 희생, 사랑, 공포, 뜨거움, 정열, 분노, 위험, 투쟁 등 극단적으로 다른 수많은 감각과 감정, 이미지의 과정과 결과인 데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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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은 패션에서 여성을 대표하는 색으로 사용되지만, 반면 너무 강렬하여 빨강의 옷을 착용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상의와 하의 전체 빨강인 패션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영화와 드라마로, 그 속에서 여성이 복수를 다짐하거나 도전적인 혹은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 장면에서 빨강 슈트나 드레스를 착용한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빨강은 이미지 연출이나 정체성을 담은 정치와 비즈니스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빨강은 사회문화적 상징성이 강한 색이었다.

서구 역사에서 의상의 빨강은 힘과 권력을 의미하였다. 이는 기독교에서 빨강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수난을 상징하는 데에서 유래된 것으로 신에게 부여받은 권력과 힘을 나타냈다. 이러한 빨강의 상징성으로 신 중심의 문화가 절대적이었던 중세 시대 교황과 종교적 고위층은 화려한 빨강의 옷으로 권위를 시각적으로 표출하였다. 또한 중세 유럽 역사에서 서유럽 대부분을 정복하고 영토를 확장한 프랑크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샤를 1세, 즉 카롤루스 마그누스의 초상화에서는 빨강과 금빛이 어우러진 의복을 착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빨강의 상징성은 근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초상화를 보면 빨강의 드레스를 착용한 것이 다수 있고 특히 의회 복식에서는 자수 등 특별한 장식 없이 짙은 빨강의 벨벳으로 만든 풍성한 드레스와 로브로 여왕의 권력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17세기 프랑스의 절대 권력 태양왕 루이 14세의 초상화에서도 그는 모자 장식부터, 상의, 하의 그리고 배경의 커튼까지 빨강이 주되게 사용된 의복과 배경으로 강렬하고 권력의 최정점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19세기 초,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초상화에서도 폐지된 왕정에서 스스로 절대 권력의 왕정으로 되돌아간 나폴레옹 황제의 짙은 빨강 벨벳의 대관식 예복을 걸친 모습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빨강이 나타낸 권위, 권력의 상징성은 왕권이 아닌 민주적, 부르주아 사회가 되면서 약화되었고, 이후 남성 패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반면 여성 패션에서는 빨강이 계속 이어졌는데 19세기 후반 여성의 코르셋과 풍성한 드레스, 20세기 초 여성 패션에 자유를 준 가브리엘 샤넬의 1930년대 후반 날씬한 허리선과 무릎 아래 길이 스커트의 빨강 벨벳 슈트 그리고 20세기 중후반 오뜨꾸띄르를 이끌던 디자이너 발렌시아가와 발렌티노 컬렉션에서 우아하고 정열적이며 현대적 패션으로 빨강은 주요 역할을 하였다. 특히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의 의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인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빨강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빨강의 우아한 이브닝 드레스를 컬렉션에 선보이고 있다. 발렌티노에게 빨강은 특별한 색으로 패션계에서는 밝은 빨강인 색상을 발렌티노 레드로 통용될 만큼 그에게 빨강, 특히 빨강 이브닝 드레스는 우아한 여성을 표현하는 데 아주 적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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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20세기 후반과 21세기가 되면서 빨강은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나타내는 주요 색상으로 변모하였다. 코카콜라, 넷플릭스 등 현대 대중사회를 대표하는 브랜드와 스트리트 웨어의 대표적 브랜드인 슈프림과 패스트 패션 H&M 브랜드의 상징색으로 선택되었고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에어 조던 스니커스의 대표색이 되었다.

또한 빨강의 넥타이는 정열적이고 좀 더 젊은 모습의 시니어를 위한 주요 아이템이 되었다. 검정색으로 가득한 옷장에 자신을 좀 더 당당하고 자신 있고 힙(hip)하게 연출할 수 있는 빨강의 아이템 하나는 필요할 듯하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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