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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전쟁론의 고전, 리더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 CEO의 전략서, 기업경영의 보감(寶鑑)…. '손자병법' 수식어들이다.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병법서'라고 말했다. 전장을 누볐던 나폴레옹과 마오쩌둥은 '손자병법'을 늘 머리맡에 놓아두었다나. 6천자에 불과한 병서의 나비효과가 놀랍다. "천 번 읽으면 신의 경지에 오른다"는 극찬이 괜히 나왔을까.
'손자병법'은 춘추시대 제후 간의 전쟁을 직접 겪은 손자가 다양한 실례와 역사적 기록, 본인의 경험칙을 바탕으로 엮은 전쟁 방법론이자 전략 실용서다. 문체는 간결하며 내용은 현실적이다. 현대사회에도 유효한 영감과 통찰이 곳곳에 번득인다. '손자병법'의 저류(底流)에 흐르는 화두는 소통이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상책(上策) 중의 상책으로 꼽았다. 싸우지 않고 이기려면 적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현군(賢君) 정조의 능행에 숨어있는 함의도 소통이다. 능행을 통해 민초의 고단한 삶을 살피고 어가가 쉬는 곳에서 백성들의 하소연을 경청했다. 능행정치였다. 정조 재위 24년간 무려 160회의 능행이 있었으니 그 빈도에서 정조의 애민사상을 가늠해 볼 만하다. 능행 횟수는 순조 재위 34년간 87회, 헌조 때는 15년간 37회로 줄었다. 또 정조는 자주 경연(經筵)을 열어 신하들과 소통했다.
JTBC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잘못한 분야 두 번째로 '소통'을 꼽았다. 부지불식간에 '불통 대통령'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다는 증좌다. 하긴 그간의 행적이 웅변한다. 연초 신년회견이 없었고 취임 1주년도 기자회견 없이 넘어갔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당위성으로 내세웠던 도어스테핑(약식회견)마저 중단했다. 지난 3월 방일 후에 가진 윤 대통령의 23분, 5천700자의 프레젠테이션은 일방적 호소와 주장으로 일관했다. 반향과 감동이 있을 리 없다. 가전제품도 비스포크(Bespoke)가 대세 아닌가. 소비자가 말한 대로, 즉 소비자 주문형이 먹히는 시대다.
손자가 강조한 적과의 소통은? 굳이 구분하자면 민주당과 북한이 정부여당의 적에 해당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 넘도록 여당 대표와 지도부를 만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가 피의자라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쨌거나 현직 제1야당 대표다. "형사피의자라도 만나야 한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진중권 광운대 교수가 "B급 영수회담"으로 표현했지만,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재명 대표를 만나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의 국회 통과에 윤활유를 쳤다.
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 때 "거야에 가로막혀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기 어려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데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때 야당 의원들에게 전화하는 게 일상이었다. 윤 대통령이 정책 현안을 설명하기 위해 야당 의원에게 전화했다는 소식은 없다. 거부권을 반복해 여야의 정책 간극을 더 벌렸을 뿐이다. 북한과도 단절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시킨 젤렌스키의 무기는 소통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국민에 녹아들고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지원을 끌어냈다. 한의학엔 통즉불통(通卽不痛)이란 말이 있다. 기혈이 잘 통하면 안 아프다는 뜻이다. 소통해야 국정 운영의 혈(穴)도 뚫린다. 소통해야 길(吉)하고 성(盛)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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