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지금 떠나면 딱 좋은 충남 공주〈하〉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전설의 곰은 죽지 않고 키 10m 솔곰으로 섰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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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3  |  수정 2023-06-23 08:55  |  발행일 2023-06-23 제14면
곰이 빠져 죽었단 연미산의 강 언덕

소나무 두 그루를 위장시킨 곰 작품

몸속의 2·3층 전망대선 숲이 한눈에

산에 좌초된 노아의 방주와 곰 굴 등

야투와 10번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모든 작품 제 운명대로 살다 스러져가

[주말&여행] 지금 떠나면 딱 좋은 충남 공주〈하〉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전설의 곰은 죽지 않고 키 10m 솔곰으로 섰다
고요한 작가의 '솔곰(Pine Bear)'은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의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왼쪽에 납작하게 보이는 것이 엠마누엘라 카마치의 '곰이 물이 되어'라는 작품이다.

고마나루와 마주보는, 곰이 빠져 죽었다는 연미산의 강 언덕은 온통 솔숲이다. 그 짙은 솔숲에서 곰을 만났다. 아주 커다랗고 아주 귀여운 곰이다. 곰의 왼쪽 귀 뒤를 뚫고 한 그루의 소나무가 높이 자라나 있었다. 또 한 그루의 소나무는 곰의 오른쪽 무릎과 오른쪽 팔뚝을 뚫고 솟구쳐 있었다. 곰은 소나무였고, 소나무는 곰이었고, 모두는 자연이었다. 곰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오른손을 슬쩍 들어 인사를 건넸다.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반가워, 어서 와, 잘 가, 잘 지내, 또 봐. 세상의 모든 안녕을 말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천년의 시간을 지나서, 또 다른 조우

이 커다란 곰은 한국의 고요한 작가가 제작한 '솔곰'이라는 작품이다. '신(新) 섞기시대, 또 다른 조우'라는 주제로 열렸던 2020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출품작이다. 그는 고마나루의 전설을 생각하면서 이야기 속 곰이 아닌 산 중턱에 묵묵히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에 주목했다고 한다. 소나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숲속에서 일어난 많은 일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또 때로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곰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는 두 그루의 소나무를 10m 크기의 곰으로 위장시켰다. 그리고 곰의 몸속으로 들어가 2층과 3층 전망대에서 숲을 내다보게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속삭이겠지, 그러면 두 그루의 소나무는 아주 조용히,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거지.

곰의 몸속으로 들어가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계단을 타고 오른다. 그리고 곰의 눈과 가슴의 반달 창으로 밖을 바라본다. 바로 아래 햇살이 잘 드는 산길에 어미곰과 새끼 곰들이 엎디어 있다. 이탈리아 작가 엠마누엘라 카마치의 '곰이 물이 되어'라는 작품이다. 2018년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이었던 '천년의 시간을 지나서'라는 주제로 탄생했다.

그에게 전설의 곰은 죽지 않았다. 곰은 강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몸을 쭉 뻗어 물로 변화되어 강과 한 몸이 되었다. 곰은 마치 춤을 추듯이 강과 함께 흘러간다. 솔 곰과 물 곰은 만남, 공생, 조화, 대화, 교감과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솔 곰과 물 곰 사이로 산길이 강처럼 흘러간다. 그 강가의 숲에는 천년을 지나 다시 연미산으로 돌아와 행복한 삶을 찾는 날개를 가진 곰 가족이 있고, 나무를 타는 곰도 있고, 벌떡 기립한 곰도 있다. 곰이 살고, 나무꾼이 나무를 하고, 곰이 죽고, 이후에도 오래 나무꾼들이 나무를 했을 연미산은 천년도 더 지나 이제 새로운 조우를 보여주고 있다.

◆야투, 그리고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야투(野投)'라는 단체가 있다. 공주를 기반으로 '자연미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한국자연미술가협회다. 40여 년 전인 1981년, '야투'는 무한한 자연과 그 속의 모든 생명력에 대한 예찬을 앞세우며 등장해 금강 백사장에서 창립전을 열었다. '야투' 즉, '들에서 던지다'라는 것은 '자연에서 표현하다'와 같은 의미다. '야투'의 '자연미술'은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창의성이 함께 작용하는 미술이고, 자연이 미술 표현의 대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가 미술 안에서 직접 작용하는 새로운 방식의 미술이다. 그들은 자연의 본래적 속성을 탐구하고 드러냄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의 미학을 제시한다.

'자연미술'을 개척하고 발전시켜 나가던 '야투'는 1991년 고마나루에서 제1회 금강국제자연미술전을 열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을 향하여!'라는 주제였다. 이를 계기로 '자연미술'은 국제적 미술운동으로 확대되었고 이후 20여 차례의 국제 교류전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세계 미술계에 그 기반을 구축했다. 2004년에는 '자연미술'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최초의 비엔날레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출범하였다. 2006년 2회 비엔날레 때는 연미산이 개최지로 선정됐다. 행사 이후 연미산은 시민들을 위한 자연미술공원이 되었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 내에는 실내전시장, 자연미술 자료실, 자연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 그리고 작가 숙소 등이 구비된 국제 자연미술센터 등이 있다. 또한 국제 레지던스와 자연 미술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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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산에 좌초된 '노아의 방주'. 우리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방주 앞의 검은 곰은 먼 훗날 별이 될 알렉세이 카니스의 'Big Black 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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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작가들이 만든 '잎 셸터'는 두 나무 사이에 안착한 나뭇잎 모양의 은신처로 연미산자연미술공원 포토 포인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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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산자연미술공원 입구. 2004년부터 '자연미술'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최초의 비엔날레로 열리기 시작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주 전시장이자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숲에는 귀여운 곰이 있고, 날개 달린 곰이 있고, 뼈대만 남은 곰이 있고, 불에서 태어나 밤처럼 까만 석탄 덩어리 곰도 있다. 흙과 나무로 만든 다양한 모양의 은신처들이 있고, 알록달록한 말도 있고, 연미산에 좌초된 노아의 방주와 곰이 살았다는 곰 굴도 있다. 뿌리가 하늘을 보는 나무들, 철로 만들어진 벌집, 공룡알처럼 커다란 알도 있다. '실험중'이라는 안내가 붙은 화장실도 있다. 연미산 자연미술학교 아이들이 만든 물을 쓰지 않는 생태화장실이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생각과 가치를 키우는 '어린이 사이언스 월든 화장실프로젝트'로 설계부터 제작까지 아이들 스스로 진행한다고 한다.

급하게 하강하는 산길을 내려간다. 코 아래가 땅에 묻힌 얼굴을 만난다. 정수리 위로는 나무가 높이 자라 있다. 2016년에 중국과 한국 작가들이 협업해 만든 '바람을 기다리며'라는 작품이다. 지면 위로 드러난 코는 숨쉬기를 갈망하는 나무의 모습을 상징한다. 힘겹게 숨을 쉬고 있지만 여전히 자라나고 있는 나무의 모습을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바람이 불면, 머리카락에 달린 수 백 개의 방울이 고요한 숲속을 생명의 소리로 가득 채운다. 머리카락을 타고 자라난 가지의 이파리들은 방울소리에 조응하는 생명들이다. 바람을 기다리는 옆얼굴을 한참 바라보며 훅훅 숨을 쉰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고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은 비엔날레 작품을 중심으로 조성된다. 2022년 제10회 비엔날레의 주제는 '또, 다시야생'이었다. 해외 10개국에서 23개 팀, 26명의 작가와 국내 작가 8명이 참여해 총 23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2020년은 '신 섞기시대', 2018년은 '숲 속의 은신처', 2016년은 '숨 쉬는 미술'이었다. 공원에는 지난 비엔날레의 작품 외에도 1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 과거의 비엔날레 작품이거나 레지던스와 미술학교 프로그램의 결과물들이다. 숲 속의 모든 작품들은 영구적으로 고정되지 않고 그들이 가진 수명의 한계에 따라 계속 교체된다. 숲의 생명들이 그러하듯, 이 숲에 살다가 저마다의 운명대로 스러진다. 우리는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작품의 모습도, 새롭게 탄생한 작품도 지켜볼 수 있다. 바람이 분다. 시간은 흘러 언젠가 때가 되면 저 많은 은신처들은 흙이 되고, 석탄 덩어리 곰은 별이 될 것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으로 가다 대전 지나 회덕 분기점에서 당진, 세종 방향으로 나간 후 유성 분기점에서 30번 당진영덕고속도로 당진방향으로 가다 공주IC로 나간다. 공주IC교차로에서 우회전, 백제큰다리 건너기 직전 생명과학고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직진한다. 연미터널 진입 전 오른쪽으로 난 길로 빠져나가 좌회전해 연미산고갯길을 따라가면 왼쪽에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입구가 보인다. 고마나루에서 간다면 백제큰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가면 오른쪽으로 공주보가 보인다. 공주보를 건너 우회전해 곰나루길을 따라 직진, 연미산고개길과 만나게 되면 길 따라 가면 된다. 입장료는 성인 5천원, 청소년과 어린이 3천원, 65세 이상은 2천500 원, 주차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과 동절기(12월-2월)는 휴관이며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5시 입장마감)까지, 11월은 오후 5시(4시 입장마감)까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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